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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진·10분 진료 고수하는 ‘나비넥타이 의사 선생님’

중앙일보

입력

환자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PC 화면에만 몰두하면서 ‘어디 아프세요?’,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어요?’, ‘(X선) 사진 찍고 오세요’ 등 세 마디로 진료를 끝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 우리 의료기관의 자화상이다. ‘3분 진료’ㆍ‘병원 수익 극대화’라는 현실에서 보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청진기ㆍ촉진ㆍ10분 진료ㆍ나비넥타이 등 환자와의 스킨십을 고수하는 노(老)의사가 있다.

서울 강남 학동사거리에 위치한 비에비스 나무병원 민병일 원장이다. 그는 서울아산병원ㆍ동국대 일산병원ㆍ건국대병원 등에서 명성을 떨친 국내 최고의 복통 명의.

그는 CTㆍMRIㆍ내시경 등 고가의 의료검사장비는 환자의 몸에 나타난 현상을 읽은 것이지 증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환자의 증상을 알기 위해선 자세히 묻고(묻고) 만지는(촉진) 일이 검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엔 흰 가운과 함께 의사의 상징이었던 청진기의 사용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안타까워했다. “의사와 환자의 스킨십이 부족하면 치료 효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신뢰관계에 금이 가기 때문이죠. 심지어는 플라시보(가짜약) 효과도 떨어진다는 말도 있어요.”

또 의사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환자에게 값비싼 검사를 은근히 유도하는 것은 일종의 ‘의료사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내가 눈만 몇 번 꺼벅이면서 ‘암검사를 해보라’고 하면 이를 거부할 환자가 몇 명이나 있겠어요? 나중에 검사해서 암이 아니라고 하면 오히려 (환자가) ‘고맙다’고 하겠지요. 이런 과잉 검사는 절대 해서는 안 되죠. 혈액검사ㆍX선ㆍ내시경ㆍ초음파ㆍCTㆍMRI 등 수많은 검사가 있지만 가령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모든 검사를 받게 할 수는 없어요. 어떤 검사를 받게 하느냐는 전적으로 의사의 역량에 달렸습니다.”

그는 “촉진이나 문진을 정확하고 자세히 실시한 뒤 그 결과에 의한 추정 진단을 확인하기 위해 최소한의 검사를 환자에게 권유하는 의사가 진짜 명의”라고 말했다.

민 원장은 10대 연예인 여성 환자가 찾아와도 예외 없이 ‘마구’ 촉진하는 의사로 유명하다.

“만져서 이상 소견이 나오면 모든 소견을 우선시해요. 촉진할 때 차가운 손으로 갑자기 배를 만지면 환자가 움찔하며 놀랄 수 있어요. ‘차갑다’는 느낌은 배를 긴장시켜 오진 가능성을 높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손을 데운 후 촉진을 해요. 진료실에 조그만 의료용 찜질기를 늘 비치해 제 손을 먼저 데웁니다.”

민 원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날 8시에 출근해 4시간 동안 환자 30명을 봤다고 한다. “최소한 10분은 환자와 대화를 나눕니다. 환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얘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요 .환자들이 느끼는 복통의 위치ㆍ정도ㆍ유형 등만 잘 들어도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빈속일 때 복통이 나타났다가 음식이나 물을 마신 뒤에 사라졌다면 위장 질환일 가능성이 커요. 음식이 위산을 중화시켜 통증을 완화해서입니다. 오른쪽 윗배가 심하게 아프면서 그 증상이 오른쪽 어깨까지 퍼지면 담낭염이나 담석증을 의심할 수 있어요. 또 왼쪽 윗배가 아프면 신장결식이나 급성 췌장염일 수 있어요. 위궤양은 식후에, 십이지장궤양은 식전이나 새벽에 속쓰림ㆍ통증이 잦은데 이런 진단은 환자의 말을 자세히 경청해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는 나비넥타이를 매는 의사로도 유명하다. 65세가 넘으면서 매기 시작했다. “환자들에게 나를 각인시키기 위해 나비넥타이를 맵니다. 내 이름은 몰라도 나비넥타이는 기억해주니까요. 또 일반 넥타이는 잘 세탁하지 않아서 온갖 세균의 온상입니다. 환자에게 세균을 옮길 수 있지요. 이에 비해 나비넥타이는 훨씬 위생적이에요. 특히 나처럼 환자와 신체적 접촉이 잦은 의사에게는.”

박태균 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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