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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할리 타는 의사’, 고관절 명의 김용식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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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두두두두둥-. 지난달 18일 서울 반포의 한강 둔치. 낮으면서도 웅장한 엔진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이윽고 등장한 무게 350㎏의 야생마 같은 모터 사이클. 안장에 걸터앉은 사내는 할리데이비슨의 ‘로드킹 클래식’을 애마(愛馬) 부리듯 자유롭게 다뤘다.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김용식(56) 교수. ‘엉덩이관절(고관절)’이 전공인 그는 ‘할리 타는 의사’로 입소문이 나 있다. “스피드 매니어가 된 이유요? 새로운 걸 보면 하이에나처럼 사족 못 쓰고 달려드는 스타일이거든요, 제가.” 그런 성격 덕에 그는 엉덩이관절 치료의 세계적 대가로 우뚝 섰다. 전에 없던 수술법도 터득했다. 의사로서 초심이 흔들릴 때면 ‘바람 앞의 라이더(Rider)’가 된다는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글=김준술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 할리는 언제부터 탔나요.

“모터사이클은 군의관 시절부터 조금씩 배워서 탔습니다. 그때부터 매력을 느끼긴 했어요. 그러다 4년 전이었죠. 친구가 ‘본격적으로 타 보라’고 권유하더군요. 퍼뜩 ‘지금 안 하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할리를 동반자로 삼게 됐죠.”

● 뭐가 그리 좋습니까.

“집중력을 높이고, 삶의 밸런스를 잡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핸들을 잡고 시동을 거는 순간 모든 걸 다 잊을 수도 있고요. 엔진 소리에서 묘한 울림이 느껴지죠. 할리는 컬처고, 매력이에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그걸 타는 거죠. 제가 원래 ‘스피드 매니어’입니다. 벤츠 CLK 55 AMG를 비롯해 성능 좋다는 차는 꼭 타 봐야 직성이 풀렸죠. 사실 이건 비밀인데요, 금요일 밤 영종도 가는 고속도로에서 고무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밟아 보기도 했어요.”

● 바쁜 의사인데 할리를 탈 시간이 납니까.

“평소 응급수술이 많아 5분 대기조 같아요. 그래서 동호회 같은 데 가입해 어울리긴 힘들죠. 그냥 지인들 3~4명이 번개모임을 해 서울 근교에서 라이딩을 즐깁니다.”

● 고교 시절 복싱도 했다면서요.

“중학교 3학년부터 대학 2학년 때까지 도장에 다녔어요. 대회에도 나갔죠. 특별한 동기는 없었는데 그냥 남자답고 멋져 보였습니다. 사실 스포츠는 다 좋아해요. 스노보드도 남들 타는 거 보고 재미있어 보여 45세에 배웠어요.”

● 원래 한량 기질이 있나 봅니다.

“가톨릭의대 본과 2학년 때 그룹사운드 하고 노는 걸 무지 좋아했어요. 1년간 낙제를 했는데 한창 수업 빠지고 놀러 가고 그랬던 시절이었죠. 얼마나 수업에 안 들어갔으면 동기생들 이름도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낙제한 것에 수치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공부에 매달렸죠. 의사가 되고 안 되고를 떠나 ‘프라이드(pride)’가 걸린 문제라 생각했어요. 그 뒤 병리·약리학 등 4과목에서 1등을 했죠. 저를 낙제생으로 만든 과목이었습니다.”

● 근성이 대단했군요.

“원래 호기심이 많습니다. 저는 ‘표범’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하이에나’가 되길 원해요. 한번 물면 포기하지 않는 동물이죠. 과제가 주어지면 완전히 몰두하는 스타일이죠. 뭘 하나 배우면 1년간 삶이 완전히 그쪽으로 바뀌어요.”

● 의사로서 성공한 것도 그 덕입니까.

“굉장히 보수적인 직업이 의사예요. 많은 학생이 의대 오려고 하는데 사실 아주 우수한 사람은 올 필요가 없어요. 수재들은 공대에 가서 좋은 물건 개발하고 그래야죠. 의사는 도제(徒弟)식으로 일을 배워요. 누가 가르쳐 주는 걸 배우고, 교과서 지식을 습득하면 됩니다. 한마디로 ‘창조적’인 게 없다는 소리죠. 저는 그런 게 싫어 인공관절 개발에 도전했어요.”

● 인공으로 만든 엉덩이관절 말인가요.

“예. 골반과 대퇴골을 잇는 부분인데 고관절(股關節)이라고도 부르죠. 10년 전부터 매달려 국내 처음으로 인공 고관절을 만들어 지난해부터 상용화했어요.”

●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의료 연구는 외국 회사들이 꽉 잡고 있죠. 외국에선 1940년대부터 인공 고관절을 썼어요. 제가 원체 새로운 일을 하는 걸 좋아하니 ‘우리도 한번 해보자’ 이렇게 마음먹었죠. 뜻 맞는 사람들과 코렌텍이라는 벤처회사도 만들었어요. 그 회사 대표가 가톨릭의대를 나온 정형외과 의사 선두훈 박사(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맏사위)예요. 남들이 없는 기술을 제품에 넣으려고 표면처리 기술에 심혈을 기울였어요. 전기화학적 처리 방법을 써서 인공 뼈가 인체에 더 잘 붙게 했죠. 단순한 해외 복제품이 아닙니다. 국제인공관절학회(ISTA)에서 상을 받았죠. 미국 정형외과 학회가 주는 상은 아시아 처음으로 거머쥐었고요.”

● 고관절 환자가 많습니까.

“외상과 골절도 있지만, 요즘엔 특히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란 병이 문제입니다. 대퇴뼈의 머리가 죽는 거죠. 뼈에 피가 공급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겁니다.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과도한 음주, 특히 소주 같은 걸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잘 걸립니다. 또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도 그렇고요. 특히 젊은 층에 많아요.”

● 특별히 소주가 문제입니까.

“연구가 많이 됐는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한텐 별로 없어요. 일주일에 수차례 소주를 과음하고, 안주 없이 깡소주 마시고 이러면 위험하죠. 이상하게 한국에서 환자가 많아요. 수술이 연간 2만 건 이뤄져요. 아직 병원에 오지 않은 환자는 더 많겠죠.”

● 폭탄주는 어떻습니까.

“그건 아직 알려진 바가 없어요.”

● 그 병에 걸리면 증상이 심각한가요.

“관절이 아프고, 운동할 때 움직이기 어렵고, 양반자세도 안 되고, 식당에 앉아 있기도 힘들고 그래요. 난치병입니다. 한번 걸리면 완치가 쉽지 않아요. 정상적 사회생활이 안 되는 거죠. 증상이 나빠지면 인공관절로 바꿔줘야 합니다. 그래서 인공관절이 중요한 거고요.”

● 보람도 많이 느끼겠습니다.

“아버지가 외과의사고, 어머니도 의대를 나왔어요. 그런데 저는 고교 때부터 의사 보기를 ‘쪼다’ 비슷하게 봤어요. 편협하게 살고, 굉장히 좁은 세계에 머물러 있다고 봤죠. 그래서 의대에 가기 싫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진학은 했어요. 제가 아니라도 진료할 사람은 너무 많아요. 그런 면에서 독창적 직업이 아닌 거죠. 그 틈에서 새로운 걸 갈구하며 인공관절도 개발하고 환자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죠.”

● 어떤 의사가 명의(名醫)입니까.

“명의란 없어요. 명의란 포장해서 주위에서 만드는 거죠. 굳이 말하면 ‘진짜 명의’는 환자들과 아픔을 같이해야죠. 그런 면에서 보면 명의란 많지 않아요. 환자에게 잠 잘 잤느냐, 아프진 않으냐 이런 것도 물어봐야 답이 나오죠. 그런데 요즘 젊은 의사들은 전부 수치만 갖고 염증이 있네 없네, 온도가 얼마네 따집니다. 환자와 공감이 없으면 치료가 잘 안 돼요. 심지어 환자의 가족 사항이나 경제 사정도 공유를 해야죠.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까지 없다, 이건 최악 아닙니까. 병원 사회사업팀에 얘기해 치료비 깎아줄 방법이 없나 이런 것까지 고민해야 진정으로 의사가 되는 거죠. 그냥 치료만 하면 로봇이 더 낫죠. 그게 사람보다 더 정확할 수도 있고요.”

김용식 교수는 해질 무렵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면서 “병원에 명의와 비명의가 있듯 남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세상의 남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는 것이다. “라이더를 꿈꾸는 사람과, 지금 라이더인 사람, 그 둘이죠.” 그가 말한 라이더는 단순히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이 아닌 듯했다. 남자의 꿈, 도전, 창조정신. 그가 얘기한 라이더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j칵테일 >> 선배의 죽음이 선물한‘콜럼버스의 달걀’

7년 전이었다. 특별한 환자가 김용식 교수를 찾아왔다. 일반외과 의사인 선배였다. 고관절 질환이 있어 수술해 줬다. 그런데 자꾸 뼈가 빠졌다. "제가 잘못한 것 같다”고 말하고 다시 수술칼을 잡았다. 그러나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뼈에 염증이 생기고 저항력이 약한 상태에서 폐렴에 걸린 선배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심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김 교수는 ‘의사를 관두자’고 마음먹었다. 아내는 "평소 꿈꾸던 영화감독을 하라”고 했다.

그러다 의사로서 뭐 잘못한 게 없나 곰곰이 반추했다. “누구나 다 책에 있는 대로 수술을 하거든요. 고관절 뒤에 조그마한 근육이 있는데 그걸 잘라야 관절막이 보이고 수술을 하죠.” 문득 ‘안 자르고 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됐다. 근육을 놔두고도 수술이 된 것이다. 경과도 좋았다. 수술받은 환자들이 관절 빠졌다고 괴로워하는 일이 없어졌다. 김 교수의 명성도 높아졌다. 김 교수는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을 세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발상의 전환, 창의적 도전으로 새 수술법을 찾아낸 것이다. 외국 잡지에 발표하니 의사들이 한 수 배우러 왔다. 그는 “비록 선배는 돌아가셨지만 세상의 많은 환자에게 훌륭한 유산을 남겨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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