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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꿈은 결국 사랑 넘치는 사회 아니었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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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영국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 테리 이글턴(67·영국 랑카스터대 영문학 교수·사진). 마르크스주의 비평의 맥을 잇는 그이지만, 좌파 내에서 그가 점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유연하다. 죽음·고통·신·종교·사랑 등을 주로 말한다. 최근 번역된 『신을 옹호하다』를 비롯해 10여권의 책이 국내 출간됐다. 80년대 번역된 『문학이론입문』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는 혁명과 사랑을 동의어로 본다. 남녀간의 열정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폭넓은 사랑이다. “마르크스의 꿈은 결국 사랑이 넘치는 사회 아닌가”라고 되묻는 식이다. 이글턴 교수가 한국연구재단(이사장 박찬모) 초청으로 방한했다. 10일까지 머물며 5차례 대중강연을 한다.

- 사회주의자에게 종교는 아편 아닌가. 신을 옹호하는 배경이 궁금하다.

“‘신을 옹호하다’라는 제목이 좀 잘못 번역됐다. 우스꽝스럽게 신을 희화화한 제목이다(※원제는 ‘이성, 믿음, 그리고 혁명: 신 논쟁에 관한 성찰’). 나는 가톨릭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기독교 전통에 익숙하다는 전제 아래 서술했다. 도킨스와 히친스 같은 무신론자들이 신을 희화화하는 데 나는 반대한다. 신을 옹호한다기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신을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신과 종교의 역사에 담긴 혁신적 의미를 놓쳐선 안 된다. 신을 상정한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생각한 역사적 상징이므로 함부로 포기할 수 없다.”

- 유럽 좌파 지식계의 변화가 있다면.

“좌파사상이 윤리적인 모습을 띠어가고 있다. 1990년대 이래 좌파의 쇠락과 관련된다. 정치경제적 파워가 있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었다. 힘이 없어지자 자기 생각을 반성해볼 시간이 생긴 것이다. 덜 오만하고 타자에게 열린 마음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 신에 대한 관심이 유럽 좌파에서 일반적인가.

“세속적인 철학자들과, 무신론 급진론자들이 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바디우·데리다·지젝 등이 그렇다. 좌파 지식인이 현실 문제에 대처할 새로운 지적 자원이 필요한데, 신학의 오랜 역사와 철학적 에너지가 자원으로 떠오르는 것 같다.”

- 급진과 보수의 기준은 무엇으로 보는가.

“우리 시대의 갈등을 급진과 보수의 문제보다 비극적 휴머니즘과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으로 나누고 싶다. 비극적이란 의미는 그리스 비극에서 연상한 개념이다. 비극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도 이런 비극은 발견된다. 고문당하고 처형당하는 순교자의 몸, 예수도 그렇게 정치범으로 처형당했다.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희구하는 이미지, 그것을 비극적 휴머니즘이라고 부르려는 것이다. 사회주의나 마르크시즘도 정치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거쳐 변혁을 시도하는 믿음의 방식이란 점에서 비극적 휴머니즘의 한 예다. 보수는 현실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견해인데, 이를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으로 부르고 싶다.”

- 인간의 사랑을 강조했다. 어떤 사랑인가.

“사랑을 한정된 의미로만 사용하면서 원래 가진 풍요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축소하고 있다. 성적인 것, 낭만적인 것, 가정 내 영역만 생각하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넒은 의미의 사랑을 정치적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발전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마르크스의 비전을 사랑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꿈은 사랑이 넘친 사회가 아니던가.”

이글턴 교수는 6일 고려대에서 첫 강연을 했다. 7일 오후 4시 광화문 교보문고 컨벤션홀에서 2차 강연을 한다. 3차 강연은 8일 오후 4시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라운드테이블 형식으로 진행된다. 9일 오후 4시 전남대에서, 10일 오후 3시 영남대에서 4, 5차 강연이 준비됐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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