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정한 사회’가 부메랑 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는 계기로 삼겠다.”(8월 29일 임태희 대통령실장)

“잘 알 만한 분이 공정사회를 천명하고 심기일전하는 중요한 상황에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9월 4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

앞의 임 실장 발언은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와 신재민 ·이재훈 장관 후보자 등 3명이 자진 사퇴하겠다고 밝힌 뒤에 한 것이고, 뒤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 발언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뒤에 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 들어 잇따라 자진 사퇴한 네 명의 공통점은 ‘공정한 사회’라는 프레임(틀)에 어긋나 여론의 비판을 견디지 못하다가 스스로 거취를 정리했다는 점이다.

요즘 청와대와 한나라당 인사들 사이에선 “공정사회가 여럿 잡는다”는 말이 번지고 있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이후 ‘공정사회 드라이브’라고 불릴 만큼 이 가치와 용어를 집요하게 홍보해 왔다. 대통령의 일정 하나하나,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 대부분에 “공정한 사회 구현을 위해”라는 슬로건을 붙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연쇄 낙마 사태를 부르자 지금은 여권 내에서 ‘공정사회’가 공포의 구호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청와대 내에서조차 “‘공정한 사회 선언’은 야당에 신무기를 준 꼴이다” “대통령이 8·15 광복절마다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내놓는 것 자체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란 볼멘소리도 나온다. “‘공정한 사회’란 말이 참 좋은데, 실천하자니 ‘출혈’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청와대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은 5일 낸 보도자료에서 “공정한 사회 실현은 분명 시의적으로 적절하다”며 “그런데 이것이 내각 인사청문회를 거쳐 ‘유명환 사태’에 이르면서 오히려 현 정부의 굴레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은 향후 정기국회와 국정감사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잣대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정부·여당을 공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작품=돌이켜보면 ‘공정한 사회’가 8·15 경축사의 핵심 메시지가 된 건 임태희 실장의 작품이라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임 실장이 ‘공정국가’라는 개념을 처음 내놓았고, 이후 대통령과 수석급 핵심 참모들이 논의를 거쳐 ‘공정한 사회’란 목표를 확정했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이 대통령 등 여권 핵심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한 고위 관계자는 “‘공정한 사회’는 처음부터 공직자처럼 ‘힘 있는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였다”며 “현재 상황이 전혀 당황스럽지 않고, 앞으로도 현재같이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궁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