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애 vs 미야자토 vs 커 … 물과 바람과 불의 대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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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호 14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가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는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올 시즌은 어느 해보다도 경쟁이 치열하다.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처럼 강한 카리스마로 투어를 장악하는 절대 지존이 없지만 반대로 여제(女帝)의 자격을 지닌 후보들이 많다고 볼 수도 있다.

골프여제 타이틀 누구 품에 안길까

올 시즌 LPGA투어는 신지애(22·미래에셋), 미야자토 아이(일본), 크리스티 커(미국)의 ‘빅3’로 압축할 수 있다. 청야니(대만)가 올 시즌 2승을 모두 메이저대회(나비스코 챔피언십·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장식했지만 전체적인 지명도에서 ‘빅3’와는 차이가 난다. 신지애는 국내 무대를 평정한 뒤 지난해 LPGA투어로 진출해 신인왕과 한국인 최초로 상금왕을 차지했다. 미야자토는 올 시즌 LPGA투어에서 5승을 거두며 다승·상금·올해의 선수·세계랭킹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커 역시 미국의 에이스로 메이저 대회인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등 여제 후보로 손색이 없다. <표1 참조>
올 시즌 LPGA투어는 8개 대회를 남겨 놓았다. LPGA투어의 여제가 되기 위한 자격 조건은 상금왕·올해의 선수·세계랭킹이다.  

물 같은 신지애, 바람 같은 미야자토
‘빅3’의 스타일은 ‘물’ ‘불’ ‘바람’에 비유할 수 있다. 신지애는 물과 같다. 보기를 해도 버디를 잡아도 미동이 없다. 숱한 막판 뒤집기로 ‘파이널 퀸’이란 별명을 얻은 이유도 막판까지 흔들림 없이 상대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커는 불이다. 커는 1997년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Q스쿨)에서 박세리와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지금의 커는 1m65㎝, 56㎏의 늘씬한 몸매에 금발의 미모를 자랑한다. 당시만 해도 굵은 테 안경을 쓰고 허리사이즈 40인치에 체중 82㎏에 달하는 거구였다. Q스쿨을 공동 1위로 통과했지만 2001년까지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커는 부진의 원인을 과도한 체중에 있다고 보고 2001년부터 엄청난 다이어트를 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체중을 25㎏이나 줄였다. 2002년 LPGA투어 롱스트럭스대회에서 첫 우승을 기록한 커는 통산 14승(메이저 2승 포함)을 올리고 있다.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자신의 허벅지를 치는 등 성격이 불 같다. 특히 한국 선수들에게 강해 ‘코리안 킬러’라는 별명도 있다.

1m55㎝의 미야자토는 바람과 같다. 오키나와 출신인 미야자토는 티칭프로인 아버지 미야자토 유(64)의 영향을 받아 4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3년 JLPGA투어 던롭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4년 프로무대에 데뷔한 미야자토는 5승을 기록하며 대상과 신인상을 차지하며 일본 열도에 ‘아이짱’ 신드롬을 일으켰다.

2005년 7승을 달성한 미야자토는 2005년 LPGA투어 Q스쿨에서 역대 최다 타수차인 12타 차로 2위를 따돌리고 투어 티켓을 따냈다. 2006년 LPGA투어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1승도 거두지 못했고 신인왕 타이틀도 이선화(24)에게 내줬다. 첫 우승은 지난해 에비앙마스터스에서 기록했다. 자신감을 얻은 미야자토는 23일 끝난 세이프웨이 클래식까지 올 시즌 5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
신지애는 지난해 상금왕이다. ‘프로는 상금으로 말한다’고 했다. 상금왕이야말로 프로를 상징하는 타이틀이다. 지난해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신지애는 시즌이 끝난 뒤 호주에서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했다. 5월 2일 끝난 JLPGA투어 사이버 에이전트 레이디스에서 우승하며 올 시즌을 기분 좋게 출발했다. 우승은 없었지만 6월 스테이트 팜 클래식까지 톱5에 4번 진입하며 샷 감각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급성 맹장염에 발목을 잡혔다. 지난 6월 10일 개막한 스테이트 팜 클래식 출전을 앞두고 샷 감각이 절정이었을 때다.

신지애는 8월에 열린 에비앙마스터스(우승상금 48만7500달러)에서 시즌 첫 승을 신고하며 상금 랭킹 1위로 뛰어올랐다.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상금랭킹 1위 자리를 미야자토에게 잠시 내줬지만 지난달 30일 끝난 CN캐나다여자오픈에서 공동 2위에 오르며 다시 선두 자리를 탈환했다. 신지애는 미야자토에 6만 달러 정도 앞서 있다.

LPGA투어는 보통 총상금의 15%가 우승 상금이다. 남은 대회 수는 8개. 그 가운데 상금액이 가장 큰 대회는 10일부터 열리는 P&G NW아칸소챔피언십(200만 달러)이다. 이 대회에서 지난해 신지애가 우승했다. 다음은 10월 말레이시아와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다. 상금 규모는 180만 달러. <표2 참조>

국내에서 열리는 LPGA 하나은행챔피언십은 신지애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미즈노오픈(총상금 120만 달러)은 미야자토의 홈인 일본에서 열린다. 신지애는 2008년 미즈노클래식에 비회원 신분으로 출전해 우승한 경험이 있다. 일본 무대에서도 강한 편이다.
 
지난해 1점 차로 놓친 ‘올해의 선수’
올해의 선수상(Player of the Year)은 한 해 동안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1966년부터 시행됐으며 카리 웹(호주), 소렌스탐, 오초아 등 당대 최고의 선수가 차지해왔다. 지난해 신지애는 한국인 최초로 올해의 선수 수상을 노렸다. 그러나 마지막 대회에서 오초아에게 역전당해 1점 차로 트로피를 놓쳤다.

5일 현재 올해의 선수 포인트 1위(172점)는 미야자토다. 커가 2위(148점), 신지애는 5위(122점)다. 올해의 선수 포인트 부여 방식은 우승했을 때 30점, 준우승 12점, 3위 9점이다. <표3 참조> 신지애와 미야자토와의 차이는 50점. 신지애가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 위해서는 남은 대회에서 적어도 2승은 거둬야 한다.

세계랭킹 1위 경쟁도 흥미진진하다. 2006년 2월부터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1위 자리는 소렌스탐과 오초아로 이어져 왔다. 올해 5월 오초아가 은퇴하자 5월에 열린 JLPGA투어 사이버 에이전트 레이디스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신지애가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했고 미야자토·커와 치열하게 경쟁했다. 세계랭킹 포인트는 LPGA(미국), LET(유럽), KLPGA(한국), JLPGA(일본), ALPG(호주) 등 세계 5대 골프 투어 성적이 반영된다. 산정 기준은 2년간 최소 35개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세계 5대 투어대회에서 거둔 성적이다. 최근 13주 이내 대회 성적에는 가중치를 부여한다. 상위 랭커가 많이 출전한 대회일수록 랭킹 포인트는 올라간다. 메이저 대회와 각국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는 가산점을 준다. 대회에서 우승하면 평균 1점 정도 올라간다.

5일 현재 세계랭킹 1위(11.25점)는 미야자토다. 커가 2위(10.84점), 신지애가 4위(10.46점)다. 신지애와 미야자토와의 점수차는 0.79점 차로 경기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1위 자리는 바뀔 수 있다. 신지애는 상금랭킹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선두 미야자토를 추격하고 있다. 신지애는 자신에게 붙여진 많은 별명 가운데 ‘역전의 명수, 파이널 퀸’을 가장 좋아한다. 별명처럼 또 한번 짜릿한 ‘역전 쇼’와 함께 골프 여왕의 꿈을 이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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