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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바람의 손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2호 02면

태풍 ‘곤파스’의 손톱은 날카로웠습니다. 아파트 1층인 저희 집 베란다 앞에 있던 나무를 이소룡 젓가락 꺾듯 망가뜨려 놓았습니다. 제법 실하게 자라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주던 나무였습니다. 갑자기 훤해진 베란다가 쓸쓸해 보였습니다. 아파트 주변은 나뭇가지와 잎사귀 잔해로 처참합니다. 곤파스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바다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기상전문가의 분석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수온이 높아지면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인데, 제겐 자연의 분노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누가 자연을 이렇게 화나게 했을까요. 누군가 화가 났을 때는 서로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내가 잘못한 건 없는지 한 번 되돌아보고 남의 생각도 들어보는 게 순리일 것입니다.

어수선하고 우울했던 아침, 누군가 메일로 좋은 말씀을 보내 주셨습니다. 인디언이 백인(빠빠라기)에게 들려주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중 한 대목을 옮깁니다.

“목적지에 빨리 다다른다는 것이 진정한 이득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도 빠빠라기는 언제나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만 한다. 그들이 만들어 낸 기계들은 대부분 원하는 곳에 빨리 다다르게 하는 것에만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일단 그곳에 도달하고 나면, 새로운 목표가 이제 그를 향해 다시금 손짓한다. 그렇게 해서 빠빠라기는 평생 동안 한 번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하고 내내 달리기만 한다. 그러다 보니 걷거나 여유롭게 거니는 일을 점점 더 잊게 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에 우리가 구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찾아오는 기쁨들을 만날 기회를 점점 더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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