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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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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중국 고대 정권의 권력 승계에는 몇 가지 방식이 있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선양(禪讓)이다.

성군으로 통하는 요(堯)는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순(舜)에게 넘겼다. 순 역시 아들을 물리치고 치수(治水)에 능한 우(禹)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그러나 우왕 이후 이 전통이 깨졌다. 우는 정사를 책임지고 있던 백익(伯益)을 계승자로 선정했으나 아들 계(啓)가 반발했다. 우왕이 죽자 둘은 권력투쟁을 벌였고, 계가 이겨 왕위를 차지했다. 이후 우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었으니 그 나라가 곧 하(夏)였다. 중국 첫 왕조다.

선양의 다음에 온 것이 자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세습(世襲)’이다. 왕뿐만 아니라 제후·선비·농민 등도 자신의 신분을 세습하거나 세습해야 했다. 이 같은 세습제도는 청(淸)나라 말까지 이어진다.

고대 한자 자전 『설문(說文)』에 따르면 ‘습(襲)’은 원래 ‘시신에 입히는 옷’, 수의(壽衣)를 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옷을 덧입다’ ‘거듭하다’ ‘이전 것을 따라 하다’는 의미로 발전했다. 여기에서 ‘계승하다’는 뜻이 나왔을 것으로 중국 어문학자들은 분석한다. 자식이 선대의 봉작(封爵)을 물려받은 것을 ‘습봉(襲封)’이라 했고, 관직을 물려받는 것을 ‘습직(襲職)’이라 일컬었다.

권력 이양의 또 다른 방식으로 ‘찬(簒)’이 있다. 제3자가 왕위를 빼앗는 것이다. ‘찬탈(簒奪)’에 그 뜻이 온전히 남아 있다. 찬탈의 역사는 전한(前漢)의 외척이었던 왕망(王莽)이 신(新)을 건국하면서 시작됐다. 『삼국지』에서 조비(曹丕)는 한나라 헌제(獻帝)로부터 황제 자리를 찬탈하기도 했다. 고려 말 이성계가 섬기던 왕을 폐하고 조선을 세운 것도 찬탈이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번에 중국을 방문한 주요 목적이 아들 김정은으로의 ‘세습’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이 이를 인정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북한에 3대째 ‘세습 왕조’가 들어설 모양이다. 그들에게 요 임금이 순(舜)에게 왕위를 넘기며 했다는 충고를 들려주고 싶다. “진실로 중도를 잡아라. 사해가 곤궁하면 하늘의 녹은 영원히 끊기리라(允執其中, 四海困窮,天祿永終).” 『논어』20편 중 마지막인 ‘요왈(堯曰)’편에 나오는 말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