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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말라 죽다 / 말라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9면

10억원에 사 왔다는 1000살 된 느티나무가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거의 고사(枯死)했다는 기사가 지난 8월 21일 토요일자 중앙일보에 실렸다. 서울로 옮겨심어진 ‘천년나무’가 다 죽어 간다니 나무에게도 타향살이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고사(枯死)하다’의 ‘枯’는 ‘마를 고’이고, ‘死’는 ‘죽을 사’이다. 이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은 ‘말라 죽다’이다. “잘 자라도록 화분에 거름을 잔뜩 주었더니 오히려 식물이 말라 죽었다” “이 공장에서 매연이 아주 많이 나와 가까운 마을의 농작물이 말라 죽었다고 한다”와 같이 사용된다.

이 ‘말라 죽다’를 ‘말라죽다’로 붙여 쓰게 되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덕은 무슨 말라죽은 덕이란 말이냐.”(출처: 한설야, <황혼>) “끼닛거리가 떨어졌는데 무슨 말라죽을 외식이냐?”처럼 쓰이는 ‘말라죽다’는 주로 ‘말라죽은’ ‘말라죽을’의 꼴로 쓰여 ‘아무 쓸데가 없다’는 뜻이다.

‘말라죽다’로 붙여 쓴다는 것은 살아 있는 어떤 것이 말라 죽어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다는 뜻으로 의미가 변했음을 알려준다. ‘말라 죽다’와 ‘말라죽다’는 의미가 서로 다르다. 붙여쓰기의 힘이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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