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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광화문 현판 바꾸되 유물로 보관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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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03년 7월 경복궁 복원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강당 200여 석에는 공청회 장소의 지리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타 공청회에 비해 자리가 다 차는 호황(?)을 보였다. 2002년 말에 연구된 경복궁 권역 복원에 관한 다양한 조사보고서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묻는 공청회였다. 당시 발간된 조사보고서와 참석한 토론자 및 방청객들은 경복궁 중건을 올바로 하기 위해 현 광화문의 위치와 방향의 제자리, 서십자각의 중건, 동십자각과 본래 경복궁 담장 중건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또한 경복궁의 바른 중건을 위해서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감에 엄두를 못 냈다. 광화문을 중건하는 데 드는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광화문을 제자리에 중건하는 것은 지금보다 14.5m 앞으로 나와야 하고 방향도 다시 잡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광화문 앞의 교통을 위해 지하도를 건설하거나 또 다른 우회도로를 건설해야 하며, 경복궁.광화문의 중건만이 아니라 세종로의 모습도 현재의 중심축 방향을 변경해야 한다. 현재 세종로의 중심축은 광화문이지만 광화문은 지금보다 5.6도 틀어져 있고 10.9m 서쪽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즉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공청회의 여론은 우선 가능한 것부터 해보자였다.

광화문은 일제에 의해 1925년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로 이전했다가 한국전쟁 때 누각이 타버리고 68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 의해 콘크리트로 중건됐다. 당시 건설 책임자에 따르면 국가적으로 풍족한 자금이 없었던 시기여서 비싼 목재보다 가격이 저렴한 콘크리트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광화문을 자세히 보면 60년대 콘크리트로 광화문을 중건한 실력이 대단할 뿐이다. 37년이 지나도 아직 건재한 콘크리트 건물이 대한민국에 있던가? 현재의 콘크리트 광화문도 근대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만약 제대로 경복궁과 광화문을 중건한 후 지금의 광화문은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정문으로 사용해도 될 것이다.

66년(丙午年) 경기도 파주의 이율곡이 말년을 보냈던 화석정과 정조의 어진(초상화)을 모셨던 수원 화성의 화령전(華寧殿) 운한각(雲漢閣)에 박정희가 쓴 편액이 걸렸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에게 아첨했을 것이고 이후 68년 광화문 중건 후 편액도 최고실력자에게 의뢰했을 것이다.

최근 광화문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화두가 되고 있다. 광화문에 걸려 있는 박정희의 글씨를 바꾼다고 한다. 궁궐건물의 역사성이나 역사재정립의 관점, 광복 6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기에 적절한 것으로 평가한다. 일부에서는 광화문 복원부터 해라, 왜 정조 글씨체냐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광화문의 중건에는 천문학적 자금과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편액을 교체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며, 이미 수 년 전부터 광화문 편액 교체에 대해 시민사회의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광화문에 있는 박정희의 글씨가 독재자의 강퍅한 글씨라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광화문 글씨에는 무인의 기(힘)가 있는 글씨라는 시각도 있다. 글씨 자체로는 당대 최고 독재권력가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글씨에 담겨 있는 힘이 있다 해서 독재자 박정희가 역사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비난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의 광화문 현판을 없애기보다는 따로 보관해야 한다.

우리는 대개 문화유산 하면 국보나 보물, 가격은 얼마나 하겠는가만 생각하지만 정반대의 것도 있다. 이를 부(負) 문화유산, 즉 네거티브 문화유산이라고 하는데, 인류의 과오를 보여 주는 장소와 건물을 말하며 특정 민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건물이나 장소(청 태종에게 항복했던 삼전도비, 수탈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등 일제에 의해 완성된 건축물)를 말하며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르샤바 역사 지구, 히로시마 원폭 돔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인류 역사상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유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친일화가 고희동 가옥, 친일과 권력 주변의 해바라기였던 미당 서정주의 양옥집, 친일파 지식인 이광수의 고택 등을 보존하자는 것은 그 집과 사람들을 기념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자는 것이다. 즉 기념관과 기록관을 분명히 구분하고 당사자들의 모든 공과 오를 기록해 역사교육의 자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논쟁의 우매함을 버려야 한다. 광화문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일 뿐이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