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관 군기 잡듯 ‘연찬회 소환’ … 여당 의원들 예민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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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관들 싹 오라고 했다. 누가 안 오는지 두고 보자.”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30일 의원연찬회 도중 기자들에게 한 얘기다. 그는 모두발언에서도 “국민의 뜻에 맞게 정부를 이끌어 갈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강조했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열린 만찬에 국무위원들은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장관 임명장을 받은 이재오 특임장관과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차관을 대신 보낸 한 장관은 “일정 때문에 못 갔는데…”라고 불안해 했다.

#2. “통일정책 부분에서도 한나라당이 보다 전향적으로 나가야 한다.”

안상수 대표가 31일 연찬회 마무리 발언으로 한 말이다. “앞으로 정부도 그렇게 전향적으로 나아가리라고 생각하지만”이란 단서를 단 채였다. 정부 통일정책의 경직성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안 대표는 근래 당·정·청 회동에서 북한에 쌀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최근 한나라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청와대와 정부의 관계에서 당의 위상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지도부뿐 아니라 의원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의원총회의 단골 발언자가 아닌 유정현 의원이 27일 의총에서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 있어도 식당 주인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레 같은 행주로 식탁을 닦으면 손님은 다시는 그 식당을 찾지 않게 된다”며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한 게 상징적이다. 당 관계자는 “당시 의총을 지켜보던 청와대 관계자들이 당내 여론이 험악한 걸 깨닫고 질겁했다”고 전했다.

여당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이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장의 민심보다는 역사적 평가를 염두에 두는 단임제 대통령과 선거를 통해 늘 민심의 평가를 받는 정당 간의 이해 차이가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이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인기가 없었던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픽 참조>

전문가들은 “청와대만 보인다”는 지적을 듣곤 했던 이명박 정부도 예외가 아니라고 본다. 중앙대 장훈(정치외교) 교수는 “당·청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길 기다리고 있던 때 재료(인사 실패)가 주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명박 정부만의 변수도 있다. 현 정부는 총선과 대선을 같은 해(2012년)에 치른다. 경희대 임성호(정치외교) 교수는 “의원들은 총선에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초조해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그들에게 대선은 그 다음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나라당 친이계는 수도권 출신이 그 주축을 이루고 있다. 총선 때 수도권에선 1∼2%포인트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의원들이 여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당연하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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