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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 만들 때 강제수용한 땅 원주인 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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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60년대 서울 구로 수출산업단지(구로공단)가 조성되던 당시 국가가 강제로 수용한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공권력을 남용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취하시켰을 경우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당시 강제수용된 토지는 200여 가구, 68만㎡가 넘어 관련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는 구로공단 토지 일부의 원소유자인 김모(1999년 사망)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소유권 이전 절차를 이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김씨는 1961년부터 정부가 구로공단을 조성하면서 자신의 경작지에 공공주택·간이주택 등을 지어 분양하자 64년 다른 주민들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던 1970년 검찰이 ‘소송 사기’ 혐의를 걸어 김씨 등 주민들을 집단 연행했다. 김씨 등 소송 중이던 주민과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주민에게 각각 소 취하 동의와 권리 포기를 강요해 받아냈다. 끝내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주민 13명은 사기 또는 위증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로부터 38년 만인 2008년 7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불법 체포와 가혹 행위 등을 통해 권리 포기를 강요했다”고 결론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의 사과와 적절한 조치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소 취하로 중단됐던 김씨의 민사소송이 40여 년 만에 재개됐고, 지난 4월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서울고법 재판부는 “국가기관의 조직적·체계적인 공권력 남용에 의해 소송 취하 등 강요가 이뤄져 정의 관념에 비춰 묵과할 수 없을 정도”라며 소송 취하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당시 소송 사기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고 토지를 빼앗긴 피해자들은 지난해 재심을 신청해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심리 중이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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