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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아우슈비츠 해방 60년] 죽음의 수용소서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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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랑을 꽃피워 60년을 해로한 유대인 부부.[제공=BBC]

죽음의 아우슈비츠에서도 사랑은 싹트고 열매를 맺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연을 맺은 유대인 커플을 영국 BBC월드가 찾아냈다. 주인공은 다음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결혼 59주년을 맞는 데이비드 츠미라즈와 아내 펄라. 다음은 데이비드가 전하는 러브스토리.

데이비드는 폴란드의 유대인 게토(집단거주지역)에서 친척 42명과 함께 살았다. 1942년 어느 날 독일군에 의해 끌려갔다. 열차를 타고 사흘을 달렸다. 물도 식량도 없이. 기진맥진해 도착한 곳이 아우슈비츠. 왼쪽 팔뚝에 수인번호 145086이 찍혔다. 독일 군인이 수시로 유대인들을 발가벗기고 분류작업을 했다. 병약한 사람은 왼쪽(가스실)으로, 일할 만한 사람은 오른쪽(작업장)으로. 하루는 '왼쪽'으로 분류됐다. 독일 군인의 옷깃을 잡고 "나는 일할 수 있어요. 살려주세요"라고 매달렸다. 친위대(SS)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말했다. 3년간 19번의 분류작업을 통과해 살아남았다.

작업장으로 가는 길에 야채를 씻는 펄라를 처음 봤다.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45년 독일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살아남은 5만명의 남녀가 독일군과 함께 이동했다. 나흘 만에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았다. 그 와중에 도망쳤다. 이후 미군에 발견돼 살았다. 미군부대에서 통역으로 일하다가 함부르크에서 수인번호가 찍힌 유대인 여성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친구를 보내 펄라를 찾을 수 있다. 펄라가 부대로 찾아와 껴안고 한참을 울다가 웃었다. 곧바로 결혼하고 프랑스.파라과이를 거쳐 아르헨티나에 자리잡았다. 자녀 둘, 손자녀 일곱, 증손자녀 셋을 두었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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