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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8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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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그때에 호남선의 객차들은 광주까지는 그런대로 요즘 완행열차의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거기부터 목포나 여수나 지방끼리 왕래하는 객차는 모두가 화물차량을 개조한 것들이었다. 나중에 돌아다니던 어느 해 겨울, 눈이 강산같이 내리는데 기차는 가다 서다를 되풀이했고 화물차를 개조한 객차 가운데 석탄을 때는 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촌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불가에 모여 앉거나 서서 고구마도 구워먹고 오징어를 구워 소주잔도 기울였다. 차에 타는 이들은 우선 머리와 어깨에 하얗게 내려앉은 눈을 털었다. 그러고는 서로 낯모르는 사람들인데도 거의 반말지거리로 날씨와 농사 얘기나 인근 동네의 소문에 대해서 주고받았다. 나는 그들 틈에 끼어 앉아서 따라 웃기도 하고 함께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어느 틈에 종점이 오기 전에 인근 지방 사람들은 거의 내리고 저 구석의 어두컴컴한 곳에 쭈그린 사람과 단둘이 남았다. 영산강 하구가 바다처럼 드넓게 한쪽으로 열리고 깨진 유리창문으로 눈보라가 사정없이 몰아쳐 들어왔다. 나는 담배라도 권할 겸 이야기 상대를 찾노라고 그 사내에게 '추우실 텐데 이쪽 난롯가로 오시는 게 어떠냐'고 그랬더니 사내가 처음에는 괜찮다더니 몇 번 권하자 다가왔다. 가까이 온 사람은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문둥이 남자였다. 눈썹이 없고 코가 문드러졌으며 몽당손이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좀 그랬지만 그 사람 말씨가 순해서 마음을 놓았다. 그는 목포에 도착할 때까지 콧노래로 '아주까리 선창'을 불렀다. 남도에는 그런 맛이 있다.

우리는 떠들썩한 시골 사람들과 돼지 닭 그리고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온갖 바구니와 함지에 뒤섞여 끝도 없이 느리게 가는 목포행 열차를 타고 갔다. 성진이는 노트 절반만한 스케치북을 한 손 위에 올려놓고 그런 정경들을 스케치했다. 우리는 모두 바다에 반했다. 연락선 부둣가의 음식 좌판에서 우리는 소주 몇 잔에 어패류 회와 구이로 요기도 했다. 지금도 술 먹다 심심해지면 술병에 대고 연락선의 발동 소리와 기적 소리를 흉내낸다.

제주해협을 건널 때 풍랑이 어찌나 거세던지 승객들의 거의가 뱃멀미로 정신이 없었다. 선복 아래가 삼등실의 너른 강당 같은 공간이었는데 사람들은 건어물처럼 널브러져서 이리저리로 굴러다녔다. 이등이나 일등실이래야 갑판 위의 선원들 쓰는 공간에 붙어 있었는데 거기도 다다미 깔린 방에 몇 사람씩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 셋은 멀미는커녕 어찌나 소화가 잘되는지 한밤중이 되자 배가 고파서 못 견딜 정도였다. 성진이와 나는 기우뚱거리는 배를 이리저리 잘도 돌아다니면서 뱃멀미에 얼이 나간 사람들이 챙기지 못한 것들을 거둬왔다. 소주에 빵에 누가 베고 있던 것인지 금이 간 수박도 안아왔다. 그리고 밤바다의 파도와 동틀녘에 저 먼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세모꼴의 한라산. 제주는 통째로 한라산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는지 해가 뜨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러니까 아침을 먹은 뒤의 시각쯤 되어서 배가 서부두 포구로 들어갔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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