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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를 곳 없는 연아에게 새로운 스승 찾는 건 필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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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호 14면

#1. 2008년 5월, 일본 최고의 남자 싱글 스케이터 중 한 명인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모로조프 코치와 결별한다는 뉴스가 일본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모로조프 코치와 다카하시는 약 3년간 함께하며 승승장구해 왔기에 일본 피겨 팬들은 매우 놀라워했다. 갑작스러운 결별은 ‘배신감’ 때문이었다. 모로조프 코치가 그해 다카하시의 국내 라이벌인 오다 노부나리를 지도하기로 했고, 화가 난 다카하시가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피겨선수와 코치,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

#2. 2010년 8월 24일, 한국 ‘피겨 퀸’ 김연아(20·고려대)를 4년여 지도한 브라이언 오서(49·캐나다)가 “김연아 측으로부터 갑작스러운 결별 통보를 받았다. 내가 더 이상 김연아를 가르치지 못하게 된 이유도 전혀 모른다”고 밝혔다. 김연아 측은 곧바로 “8월 초 오서 코치에게 시간을 갖자고 말했고, 23일 오서 코치가 김연아를 지도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 5월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오서 코치에게 배우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그때부터 서먹한 사이가 됐다”고 반박했다. 오서 코치는 26일 관례를 깨고 “한국의 유명한 전통 음악인 ‘아리랑’을 피처링했으며 여러 한국 음악을 모아서 편집했다”라며 김연아의 다음 프로그램을 언급해 비난을 받고 있다.

헤어질 때 코치와 상의하는 선수 없어
김연아와 오서 코치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지만 현재로써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이 더 이상 함께 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4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고생하며 수많은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다닌 두 사람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피겨스케이팅 선수와 코치의 독특한 관계에서 그 원인을 찾아본다.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 출전한 김연아가 출전순번 추첨에서 자신이 원하는 순번에 배정되자 오서코치와 기뻐하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은 기본적으로 선수가 코치를 선택한다. 그래서 헤어질 때도 선수 쪽에서 먼저 결별을 고하는 게 대부분이다. 다카하시도, 김연아도, 김연아의 라이벌 아사다도 코치에게 먼저 이별을 고했다. 김연아의 말처럼 선수와 코치는 만나고 또 헤어질 수 있는 것이고, 코치와 상의하고 헤어지는 선수는 없다.

피겨 코치와 선수는 서로 기대하는 레벨과 급여가 맞아 떨어지면 사제 관계를 맺는다. 이때 코치는 선수의 인성과 함께 부모의 인품을 보기도 한다.

이런 조건 가운데 하나가 어긋나면 둘은 헤어지게 된다. 예컨대 선수가 더 높은 수준의 코치가 필요하면 코치를 바꾼다는 의미다. 피겨계에서는 “연령대에 맞는 코치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어린 선수들은 점프 등 기술을 잘 가르치는 코치를 선호하고, 어느 정도 기술이 안정된 선수들은 자신을 예술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려 줄 코치를 찾는다.

다른 이유로 사제 관계가 끝나는 경우도 많다. 코치와 어머니 간 싸움, 선수와 코치 간 갈등과 같은 성격 차이다. 선수가 아주 어릴 때부터 피겨장을 드나든 부모들은 대부분 ‘내 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때로 코치의 지도 방식에 간섭을 할 때가 많다. 또 이를 지켜보는 선수들은 종종 코치들을 무시하기도 한다. 또 한 코치 아래서 여러 명이 함께 지도를 받는 피겨 종목의 특성상 ‘편애’가 결별의 원인일 때도 많다. 피겨 코치들이 “제일 힘든 게 선수 어머니나 선수와의 기싸움”이라고 말할 정도다. 선수가 코치와 이런 식으로 결별을 할 때는 적지 않게 잡음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김연아와 오서 코치는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김연아는 미니 홈피에 “4년간 정말 행복하기만 했을까요”라고 썼다. 일부 피겨 관계자들은 김연아의 발언을 근거로 “피겨 목표 설정을 두고 의견 차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짐작한다. 단적인 예가 올림픽 금메달 이후 나온 오서 코치의 ‘트리플 악셀’ 발언이다. 오서 코치는 올림픽이 끝날 무렵 국내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언젠가 김연아가 트리플 악셀에 도전했으면 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며칠 후 입국 기자회견에서 “트리플 악셀 발언은 금시초문”이라며 “시도할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다. 양측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례다. 일부 코치들은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가 훈련 지도 방법을 두고도 오서 코치와 이견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결별의 원인은 이뿐이 아닐 것이다. 한 피겨 관계자는 “김연아가 올림픽 이후 상황에 적절하게 ‘맞춤 훈련’을 하기 위해 코치를 바꾸려 했을 수 있다. 같은 시기 오서 코치가 미국과 일본 주니어 선수들을 가르치고, 아사다한테까지 영입 제의를 받으면서 인간적으로도 배신감을 느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밴쿠버 올림픽 후 대부분의 피겨 관계자들은 “김연아의 기량에 모자람이 없다”고 했다. 점프는 완벽했다. 스핀이나 스파이럴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기술적으로 더 성장할 데가 없어 보였다. 김연아 측은 그때부터 이미 기술 중심의 오서 코치 교체를 생각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오서 코치의 입장은 다르다. 김연아를 만나기 전까지 오서 코치는 아이스쇼 투어를 주로 했다. 그러다가 2006년 5월 김연아를 처음 만났다. 김연아 측의 간곡한 부탁으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서 코치는 김연아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 명성에 비해 낮은 급여(1시간 110달러·한화 약 13만원)를 받았다.

아이스쇼 때는 돈을 받지 않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연아와 자신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의 계약관계보다는 신의가 돈독한 관계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날아든 갑작스러운 결별 통보에 김연아 모녀에 대한 서운함이 커졌고, 홧김에 관례를 깨고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배경곡까지 발표해버렸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연아 측은 “오서 코치와의 결별이 선수 생활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내년 3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예정대로 출전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김연아는 무엇보다 새 코치를 선임하는 게 급선무다.

세계 최정상에 오른 김연아는 코치를 선임하기도 쉽지 않다. 최근 거론되는 건 밴쿠버 겨울올림픽 남자 금메달리스트 에반 라이사첵(25)과 여자 피겨의 전설 미셸 콴(30)을 양성한 프랭크 캐럴(71·미국)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많아 김연아와 제대로 호흡을 맞추기 쉽지 않다.

최고 김연아 마땅한 코치 찾기 어려워
러시아 출신 타티아나 타라소바(63) 코치도 김연아의 명성에 어울린다. 올림픽에서 타라소바의 제자들이 딴 금메달이 9개, 그래서 그는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그러나 김연아의 라이벌 아사다를 조련하는 데 실패했다. 아사다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고, 아사다의 올림픽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 ‘종’은 세계 피겨 전문가들에게 ‘최악의 프로그램’이라는 혹평도 들었다. 그래서 최근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카하시의 코치였던 모로조프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도자다. 하지만 여성 편력이 심하다. 2007년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일본의 안도 미키와 4년 이상 호흡을 맞추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과거에도 그는 피겨 선수 출신 여성들과 세 번 결혼해 모두 이혼한 경력이 있다.

그 때문에 피겨 전문가들은 “김연아가 유명 코치를 선임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김연아가 오서 코치를 처음 선임했을 때도 오서 코치는 지도자 경력이 전무했다. 이번에도 새 얼굴을 발굴해 함께 성장하는 쪽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 또 김연아는 이제 유명 코치와 손발을 맞추기엔 너무 개성이 강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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