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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기자의 ‘금시초연’ ⑦ 카겔 ‘디베르티멘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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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연주자들이 지휘자에게 반항한다면? 독일 작곡가 마우리치오 카겔(1931~2008·사진)이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이 곡에서 플루트·클라리넷·첼로 등의 연주자들은 지휘자의 손짓과 관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무대 전후 좌우로 정신 없이 쏘다닌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첼리스트처럼 악기를 끼고 연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즉흥무대는 아니다. 모두 악보에 쓰인 대로다. 카겔은 지휘자가 통제하는 무대, 기존 규칙을 따르는 연주에 의문을 제기했다. 14명의 연주자와 한 명의 지휘자에게 일종의 연기를 요구했다. ‘기분전환’이라는 뜻의 가벼운 음악 형식인 ‘디베르티멘토’에 물음표까지 붙여 관습적 공연을 비꽜다. 연주자와 지휘자간의 긴장과 대립이 핵심이다.

카겔은 연주자를 배우로 만드는 작곡가다. 악보에 표정을 지시하고, 춤과 대사까지도 요구했다. 1964년작 ‘세 연주자의 대결’에서는 첼로·바이올린 주자가 테니스 공을 주고받듯 번갈아 연주한다. 그 사이에서 타악기 연주자가 심판을 본다. ‘기악적 연극’이다. 카겔은 틀이 고정된 모든 것에 알레르기를 느꼈다.

카겔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독일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문학·철학을 공부하고 영화비평가로도 활동했다. 그가 음악에 연극과 영화 요소를 끌어들인 배경이다. ‘디베르티멘토?’는 타계 2년 전 완성한 작품. 카겔의 진수를 보여준다. 조성이 없는 음악이지만 전통 화음도 일부 포함됐다.

부천필하모닉과 서울대 음대 현대음악연구소 ‘스튜디오 2021’이 ‘디베르티멘토?’를 국내 초연한다. 현대음악의 최신 실험을 소개한다. 무대 위 돌발행동에 청중은 어떻게 반응할까. 프로그램 디렉터인 고우씨는 “음악과 공연의 미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카겔 ‘디베르티멘토?’(2006년작, 총 30분)=9월 1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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