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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고용의 질보다 양에 치우친 세제 개편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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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상당히 다르다. 투입되는 세제 수단은 일용근로자 원천징수 세율인하, 근로장학금 소득세 비과세 등 매우 미약한 조처들이다. 세금을 내려 해도 낼 세금이 없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재정을 통하지 않고는 지원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제를 통해 소규모 지원만 하는 경우 정부는 그저 지원하는 시늉만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투자금액에 대해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임시투자세액공제(임투)제도에서 고용 기준을 추가한 고용 창출 투자세액공제제도로의 전환은 의미 있는 정책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의 성장과 고용의 창출이 연계되면서 기업의 성장과 가계 분야의 소득 증대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다시 내수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개편안은 고용 규모만을 중시하고 있다.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장기적으로 유지되려면 교육에 계속 투자하고 정부는 이를 세제와 세제 외적인 수단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지원책은 찾아볼 수 없다. 청소업·경비업 등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업종에 대한 세제 지원도 고용의 질적 수준의 향상을 도외시하고 고용 규모의 단기적 상승만 기대하는 조치다.

임투제도의 주된 수혜 대상은 결국 대기업이었다. 매년 임투로 2조원의 세금을 대기업에 감면해 주던 정부는 법인세율 인하로 그 이상의 세금을 기업에 감면해주고도 임투를 환수하지 못하다가 이번 세제 개편에서야 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제도로 전환하면서 임투를 불완전하게 종료시키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한 감면을 고용과 연계한 것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이를 통해 기업에 대한 과도한 조세 감면이 온존하는 것은 문제 다.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국가 전체 구성원의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 대기업만 열외시켜 준 셈이다.

지난 수년간의 고환율 정책은 수출 대기업에는 유리한 반면 내수기업과 소비자에게는 부담을 줬다. 수출 대기업이 자신들의 실제 경쟁력에 비해 해외에서 더 많은 소득을 거둔 반면, 이는 고스란히 내수기업과 소비자에게 원가 상승과 소비자물가 인상으로 전가됐다. 설혹 수출 대기업에 대한 지원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제는 이러한 정책의 분배적 문제점을 어느 정도 보정해 줘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0년 세제 개편안은 균형적이고 적절한 정책 목표를 표방하곤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여전히 대기업 위주의 정책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적 균형점에서 이탈했다는 거다.

바람직한 개편도 눈에 띈다. 예컨대 세무검증제도는 고소득 서비스업종의 기장 내용을 세무사가 의무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고 검증된 자료에서 부실이 발견되면 세무사에게 책임을 묻도록 했다. 납세자와 세무대리인이 과세표준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협력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제도다. 복식부기의무자가 추계과세방식으로 과세소득을 신고하는 경우 기타경비에 대한 비용 인정비율을 절반으로 낮춰 세부담을 높인 것에도 과표 양성화 의지가 엿보인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