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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수사·여론 봐서” … 국새 의혹 발빼기 바쁜 행안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경찰 수사가 나와 봐야….” “국민 여론을 봐서….”

요즘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의 행정안전부에 돌고 있는 유행어다. 국새 제작과 관련한 의혹을 대하는 행안부의 소극적인 자세를 비꼬는 말들이다. 국새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는지, 국새 제작에 사용하고 남은 금으로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했는지, 문제의 국새를 계속 사용할 것인지…. 의문점이 꼬리를 물고 있으나 정작 국새 제작의 관리·감독 주무부처인 행안부는 꿀 먹은 벙어리다. 담당 공무원들은 입을 맞춘 듯 두 마디만 계속해 되뇌고 있다.

행안부는 국새 제작에서 정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자체 감사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개점 휴업 상태다. 경찰의 수사가 끝난 뒤 그 결과를 봐서 징계 문제를 다루겠다는 자세다.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감사를 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해명한다. 조그만 홍보거리만 있어도 신문·방송에 나와야 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문제는 행안부가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민홍규 전 국새제작단장과 이창수 국새제작단원의 ‘골프 퍼트’ 제작을 둘러싼 이권 다툼 과정에서 국새 문제가 불거졌고, 애꿎게 행안부의 잘못이 부풀려져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새 제작으로 인한 문제는 국새제작단에서 전적으로 책임지도록 계약서에 적혀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제작비를 건네고 국새를 제작해 주도록 일괄 계약했으니 행안부가 세부적인 것에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행안부는 관리 부실, 감독 책임 문제에 애써 눈을 감는다. 하지만 행안부는 국새 제작 방법이 담긴 백서를 만들면서 “국새 제작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묵살했다. 당시 담당 공무원은 민씨에게서 금도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새는 국가를 상징한다. 헌법 개정 공포문 전문 등 국가의 중요 문서마다 국새를 찍는다. 이번 사건으로 4대 국새의 위상은 추락했다. 행안부가 경찰 수사, 국민 여론만 운운하며 눈치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 절차와 규정은 몽땅 뜯어고치고 관련자는 일벌백계하겠다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한은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