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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海印寺' 건축계 문화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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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고즈넉한 겨울 산사가 사람들 발소리로 부산해졌다. 28일 낮 12시쯤 경남 합천 해인사. 눈발이 흩날리는 절집 마당으로 건축가 2백여 명이 모여들었다. 해인사(주지 세민)가 802년 절을 세운 지 1천2백년 만에 새 도량을 지으려 마련한 설계경기 현장 설명회와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달려온 건축인들이었다.<본지 12월 24일자 21면>.

최두남 서울대 교수 등 각 대학 건축과 사람들, '공간' 등 대형 건축사무소 실무자들, 이종호·이일훈씨 등 아틀리에형 소규모 건축사무소 대표들을 아우른 참석자들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네 왔구나." "선생님도 오셨습니까?" 원로부터 소장 청년층까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총출동한 듯 해인사는 건축인들의 세밑 잔치 마당으로 훈훈해졌다.

'개산 1200년 해인사 신행(信行)·문화(文化) 도량 건립 설계경기 공모'는 26일 마감했는데 참가 신청자가 85명을 기록해 이미 건축계의 화제가 됐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 후원으로 성보박물관에서 열린 이날 심포지엄도 한국에서 이뤄진 설계경기 관행에 비추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1백30여 쪽에 이르는 두툼한 건립 보고서 겸 설계경기 지침서는 이번 새 도량을 짓는 과정과 의의를 낱낱이 적어 건축인들의 의욕을 북돋웠다. 사회를 맡은 건축가 정기용씨는 "불교계, 건축계, 비정부기구 삼자가 힘을 모아 불사를 이루는 이런 자리는 처음일 것"이라며 심포지엄을 시작했다.

먼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화엄사상과 불교건축'을 주제로 해 "새 시대의 새 절은 중생과 함께 가는 사회적 문화·정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시대정신과 불상의 이미지'를 제목으로 한 슬라이드쇼에서 "백제·신라·고려 시대의 불상이 각기 다르듯이 21세기 우리 시대의 불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신해인사 창건의 코디네이터로 참여한 이상해 성균관대 교수는 "우리 나라에서 현재 이뤄지는 불사들이 선조들의 맥조차 잇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에서 출발하자"며 "1단계에서 5∼10명을 뽑아 다시 설계경기를 치르는 엄정한 2차 과정이 새 불사를 향한 주최측의 각오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인사(www.haein-sa.org)는 내년 2월 28일까지 1단계 설계경기를 끝내고 2단계 작품을 받아 10월 중에 착공, 2005년 10월에 준공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오후 6시까지 열띤 질의와 토론을 벌인 건축가들은 삼삼오오 어둠이 내린 해인사를 빠져나가며 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절집은 어떤 것인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합천 해인사=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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