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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 외래어 정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일본인들은 외래어를 꽤 즐겨 쓴다.

일본인들과 대화할 때도 '가소린 스탄도'(gasoline stand·주유소) 등과 같이 외래어를 쓰는 것이 더 편리할 때가 많다.

외국문물을 모방·재창조하는 능력이 뛰어난 일본인들은 외래어를 손질하기도 한다. '제미'('세미나'의 독일어 제미나르)와 같이 원어가 단축되기도 하고, 외래어·일본어가 합쳐져 새로운 단어가 창조되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취소하는 것'을 뜻하는 '도탄캰'은 '마지막 순간'이란 뜻의 일본어 '도탄바'(土壇場)와 '취소'란 영어 '캰슬'(cancel)이 합쳐진 말이다. 일본에선 외래어가 매년 5백여개씩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햄버거 체인점 '맥도널드'가 '마쿠도나루도'인 것처럼 원어 발음과 너무 동떨어진 외래어가 많아 외국인들도 당황할 정도니까 영어를 잘 모르는 일본인들의 고충은 더하다. "아름다운 일본어가 사라진다"는 걱정도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국립국어연구소가 결국 칼을 빼들었다. 연구소는 25일 관공서의 공문서에 쓰이고 있는 외래어 1천1백72개 가운데 이미 정착된 단어를 제외한 63개를 일본어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데리바리'(delivery)는 '배달''택배', '바리아프리'(barrier free)는 '장애제거', '멘타루헤루스'(mental health)는 '정신건강'으로 고쳐쓰자는 것이다. 연구소는 의견수렴 후 내년 4월에 바꿔 쓸 단어들을 확정할 예정이다.

일부에서는 일제가 태평양전쟁 중 영어사용을 금지했던 전례를 들어 "연구소가 우경화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국어연구소의 가이 무쓰로(甲斐睦郞)소장은 그러나 "외국 것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게 아니다. 난삽한 외래어가 범람해 외국인도 어려워 하고, 일본인 사이에선 세대차가 커지고 있다. 노인들이 공문서를 못읽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알기 쉬운 단어로 바꾸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세상이 바뀌면 언어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일 것이다. 외래어가 넘치고 인터넷에서 '국어 파괴'가 성행하는 한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day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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