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選신드롬을 극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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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년 가까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온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16대 대통령선거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의 당선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의 정계 은퇴로 막을 내렸다. 승자에게는 열렬한 축하를, 패자에게는 따뜻한 격려를 보내면서도 우리 사회가 새로운 균열로 양분되고 있는 현상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승리를 만끽하며 환희하고 있는 선거열광 신드롬과 패배의 분을 삭이지 못해 무기력해진 선거피로 신드롬이 그것이다. 이러한 균열현상은 선거기간 중 지역, 세대, 이념, 북핵 문제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빚어낸 것으로 이에 대한 치유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화합과 정치발전은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폐증 환자처럼 외부와의 대화를 단절하고 자신의 내면만 지향하고 있는 상태를 건전한 상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신드롬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는 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기득권을 타파하고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 에너지가 선거사상 처음으로 승리했다는 데서 충분히 열광하고도 남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촉발되기는 했지만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자는 데 반대할 명분도 이유도 없기 때문에 이를 쟁점으로 부각시켰고, 여기서 거둔 승리였기에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른 한편 산적한 부정부패에 대한 심판이 무산되고 오늘의 한국을 이루어낸 연륜과 경륜이 중시되지 않았다는 데서 선거패배 이후 극도의 허탈감에 빠진 심리상태를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한 핵문제의 대두로 그 어느 때보다 안보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시점에서 전통적인 동맹관계가 손상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도 전혀 근거 없는 기우라고 할 수만은 없다.

선거과정에서 표출된 여러 요소가 이와 같은 신드롬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사항이 아니다. 어느 사회나 이러한 종류의 균열과 갈등은 있는 것이고 또 관용과 양보의 자세로 대화에 나서기만 한다면 수렴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개의 신드롬이 배타적 우월주의로 발전해 대화를 거부할 경우 우리 사회는 치유불능의 균열로 영영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상대를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폄하한다거나, 패배로 실의에 찬 나머지 안보우월주의에 집착해 상대를 국가안보도 안중에 두지 않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는 적지 않은 문제를 유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도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 수립된 정권이 도덕성의 타락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도덕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도덕성을 과신한 나머지 상대의 도덕성을 부인할 경우 대화가 진전될 수 없어,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두 집단으로 나뉘고 말 것이다. 안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지만 특정 집단만 독점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정권이 안보논리를 앞세워 인권을 탄압했던 사실은 기억에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월주의에 빠져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고 자신의 논리를 상대방에 강요할 경우 균열의 강도가 더욱 높아져 우리 사회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 명약관화할 것이기 때문에 시급히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어느 한편만으로는 도덕성의 구현도, 안보의 확립도 완전하게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열광 신드롬과 선거피로 신드롬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성을 강조하되 상대의 처지를 헤아려 관용의 정신을 발휘하는 아량이 요구되고, 안보를 중시하되 상대의 논리에 귀를 기울이는 양보의 정신이 요청된다. 국민 전체가 아닌 절반의 노력이나 논리만으로 우리 사회가 처해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선거의 환희나 피로를 떨쳐내고 아량과 양보로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 사회의 균열을 해소하고 화합을 이루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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