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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비용 무서워 말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0호 30면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통일세 논의를 제안한 뒤 남북통일 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두 가지다. 첫째, 통일비용은 얼마나 되고 국민 부담은 얼마나 될 것이냐 같은 구체적인 비용문제다. 둘째, 통일세 논의가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흡수통일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그러나 통일세 제안의 본질은 당장 세금을 걷어 흡수통일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급변하는 통일환경에도 불구하고 통일담론이 기존의 논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통일담론이란 사실상 통일보다는 분단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법적인 통일보다는 남북한 상호체제 인정, 평화정착과 교류협력 등을 골자로 한 ‘사실상의 통일’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 아래 경제·사회 교류의 양적 확대는 남북관계 발전의 지표로 인식됐고, 통일에 대한 관심과 의지보다는 교류·협력 확대가 더 중요한 대북정책의 목표처럼 간주됐다. 더욱이 통일에 대한 비전이 모호해지면서 통일은 실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인식마저 확산되고 있다. 막대한 통일비용이 거론되면 통일은 비전과 희망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으로 간주되곤 한다.

기존 통일담론의 또 다른 한계는 북한 상황에 기인한다. 북한의 정치·경제 상황이 점차 악화되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다. 무디스나 S&P 같은 신용평가회사들은 올 들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평가 시 북한의 급변 가능성을 주요 변수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우려는 북한의 붕괴 자체보다도 한국이 정치적으로, 재정적으로 얼마나 통일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 요컨대 막대한 통일비용과 통일에 대한 준비 부족은 국민의 통일의지를 약화시키고 국가신인도를 해치는 주된 요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의 반발과 국민적 합의 미비, 그리고 기존 통일담론의 한계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세 논의 제안은 통일논의의 족쇄를 푸는 화두라고 할 수 있다. 탈냉전 이후 변화된 통일환경을 점검하고 통일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념과 정파를 떠나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실종된 통일담론의 부활과 통일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회복시키는 일이 급선무다.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고 통일이 가져올 미래 비전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둘째, 남북관계를 관리하고 안정만을 희구하는 소극적 ‘대북정책’에서 탈피해 통일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진정한 ‘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셋째, 우리의 통일비전을 주변국과 공유하고 그들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통일외교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남북통일의 당위성은 물론 통일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도록 해야 한다.

통일준비는 미래 성장동력을 준비하는 투자다. 통일 논의는 ‘비용 대 편익’의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한 미래비전으로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이익이 되면 통일을 하고 손해가 되면 분단을 지속시키자는 발상은 다음 세대를 위한 번영의 주춧돌을 놓아야 하는 기성세대의 직무유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 통일의 기회는 올 수 있지만 우리의 노력과 준비가 없다면 통일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최진욱 한국외국어대 정외과를 졸업 뒤 1992년 미국 신시내티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10여 년간 재직하며 북한 정치·행정과 통일정책을 연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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