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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노조의 타락, 경영진 책임이 더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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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 간부가 돈을 받고 계약직 사원 채용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대기업 노조의 횡포와 도덕적 타락, 그리고 경영진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대기업 노조가 권력화된 지는 오래다. 파업을 무기로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하면 경영권 간섭도 극심하다. 복지시설 운영과 비품 납품을 통한 잇속 챙기기 또한 비일비재하다. 이제는 노조 간부가 사원 채용에까지 간섭하여 취업 희망자로부터 수천만원씩 받았다고 하니 너무나 충격적이다. 회사가 공정한 절차를 거쳐 적격자를 선발하는지 노조가 감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노조의 권한이 아무리 크다 해도 회사의 인사권까지 침해할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기아차 노조는 산하 5개 집행부 200여명이 물러나기로 했다. 그러나 총사퇴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 다른 노조 간부들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 노조가 할 일은 채용된 계약직의 신분과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 생산직을 상대로 취업장사를 할 정도로 노조가 타락했으니 노동 귀족을 넘어 동료의 피를 빠는 거머리나 다름없다.

회사의 책임도 크다. 경영진의 묵인과 협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경영진이 노조와 적당히 타협하기 위해 노조 간부에게 신입사원 채용에서 한몫을 떼줬다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오히려 경영진에게 있다. 결국 경영진과 노조가 결탁하여 회사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부도덕한 노조가 똬리를 틀고 버티고 있는 회사에 돈을 내고라도 들어가야 하는 취업 희망자들이 불쌍하다. 이들의 아픔과 고통은 누가 대변해줄 것인가.

검찰은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노조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 여부, 왜 경영진이 이렇게 허약했는지, 혹시 경영 비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노조와 경영진 모두를 수사하라. 광주 공장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의 유사한 비리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