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소금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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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문재(1959~ ), '소금창고'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다.


지금은 갯벌이 된 <염전이 있던 곳>과 <마흔 살> 사이에는 이삼십년 흘러간 세월이 있을 것이다.
흘러간 시간 속에는 없어진 염전과 소금 창고가 있다.
염전과 소금 창고가 있던 자리에서
수은처럼 굴러다니는 햇빛과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가 지나간 시간을 자꾸 길어 올려 시인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 올린다.

<가는 게 아니고 자꾸 오는> 옛날을 뽑아 올린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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