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 리들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624쪽, 2만5000원
1950년대 ‘기적의 살충제’로 통했던 합성화학물질 DDT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당시 박박머리 꼬마들이 DDT를 허옇게 뒤집어 쓴 채 소독하곤 했던 풍경 때문이다. 몸에 축적되면 내분비계를 교란시켜 암을 유발한다는 치명적 독성이 확인된 것은 훗날이다. 62년 생태운동의 고전 『침묵의 봄』의 저자 레이첼 카슨은 DDT같은 화학물질 때문에 대규모 암이 퍼진다고 인류 앞에 경고했다. 당시 이 책 저자는 영국의 10대 소년이었다. “학교에서 내가 병이 들어 일찍 죽을 것이라고 배웠을 때 정말 겁이 났다.”(443쪽)
이후 세상은 과연 어찌 됐나? 암 발생률은 되레 떨어졌다. 학계는 화학물질과 발암 사이의 상관관계를 추적했지만 모두 헛수고로 끝났다. 현재 화학물질에 의한 암은 모든 암 발생의 2% 미만. 저자는 당시 DDT가 매년 5억 명의 생명을 구해냈다는 미국과학아카데미 자료를 제시하면서 슬쩍 묻는다. 세상은 정말 악화일로인가? ‘입이 큰’ 사람들이 암의 시대라고 단정했던 80~90년대는 건강·수명·환경이 외려 더 좋아졌지만 왜 20세기의 학문적 담론은 절망적 예언으로 봇물을 이룰까?
수많은 전문가들의 비관적 경고와는 달리 영국에서 인간광우병에 의한 사망자는 2008년 한 명, 2009년 두 명에 불과했다. 미래를 비관하는 ‘종말론 중독자’들의 목소리가 컸던 예로 꼽힌다. 사진은 2007년 7월 부산시청 앞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여성생활 감시단 발족식. 당시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있다 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다. [중앙포토]
현실은 그들의 예측과 다르게 흘렀다. 예전 영국의 광우병 소동이 그렇다. 휴 페닝턴 등 전문가들은 영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 75만 마리가 인간 먹이사슬에 유입되면서 수만, 수십만 건의 인간광우병(vCJD)이 발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사망자 수는 166명이며, 2008년 사망자는 단 한 사람, 2009년에는 두 명”(458쪽)이 전부다.(행인지 불행인지 2년 전 한국의 광우병 괴담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지난 200년 사이 인구는 6배로 늘었으나 기대수명은 2배로 늘었다. 실질소득도 6배로 커졌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인류는 놀라운 성취를 이뤘다”(34쪽). 물론 비관론자들의 목소리란 예방효과를 겨냥한 발언이겠지만, 저자의 단언대로 그건 그 자체로 유죄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직무유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분명한데, 독법은 따로 있다. ‘비관 대 낙관’ 구도만큼 중요한 건 이 책은 새로운 역사책의 등장을 알린다. 20만 년 전 구석기 이후 현대문명에 이르는 시간여행을 진화생물학의 시야로, 길고 긴 호흡으로 바라본다. 전체 11개 장 중 제2~8장에서 기존 인문사회과학을 통섭한 진화생물학의 독주가 장쾌하다. 기존 역사학은 물론 인류학·생물학·철학·공학까지 동원한 안목과 기량은 실로 대단하다. 진화생물학의 무한질주와 함께 미래학을 겸한 것이 이 책인데, 저자는 1958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에서 동물학으로 학위를 받았고, 『붉은 여왕』에 이어 『게놈』으로 학문적 출세를 했다. 현재 뉴캐슬에 거주하며 국제생명센터의 의장직을 맡고 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