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盧 탈당파 지역구서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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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철새 정치인이 호강했던 시절도 한 철이었다. 지난 가을 따뜻한 양지를 좇아 소속 당과 지지 후보를 바꿨던 정치인들에 대한 12월 19일 유권자들의 심판은 냉혹했다.

자민련 이인제(李仁濟)총재권한대행. 지난 1일 민주당을 탈당한 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그의 고향 논산의 개표 결과는 노무현 후보 4만8천여표(61.2%), 李후보 2만6천여표(33.1%). 고향에선 한번도 진 적이 없던 李대행이지만 그의 갈지(之)자 행보에 고향사람들마저 등을 돌렸다.

김원길(金元吉·서울 강북갑)의원과 박상규(朴尙奎·인천 부평갑)의원. 후보 단일화에 앞장섰던 두 의원은 단일화가 성사되자 바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이들의 지역구에서도 각각 3만여표와 2만5천여표차로 盧후보가 압승했다. "지역 민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고뇌에 찬 탈당의 변과 함께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던 전용학(田溶鶴·천안갑)의원과 함석재(咸錫宰·천안을)의원의 지역구에서도 盧후보가 1만6천여표나 앞섰다.

석달여의 반노 활동 끝에 결국 지난달 李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강성구(姜成求·오산-화성)·원유철(元裕哲·평택갑)의원도 각자의 지역구에서 盧후보의 우세를 씁쓸히 지켜봐야 했다.

정몽준(鄭夢準)대표의 국민통합21로 옮겨갔던 신낙균(申樂均) 전 문화부 장관과 김민석(金民錫) 전 의원. 한때 민주당의 원성을 샀다가 盧·鄭 단일화 이후 공동선대위에 합류하면서 극적으로 재기하는가 싶었지만, 선거일 전야 鄭대표의 전격 공조 파기로 순식간에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이들 지역구(남양주·서울 영등포 을)에서도 盧후보가 1만2천∼3천여표차로 승리했다.

반면 끝까지 중립을 지킨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총재는 盧후보가 당선하면서 한결 여유를 되찾게 됐다. JP 고향인 부여의 유권자들도 盧후보에게 李후보의 거의 두배인 2만7천여표를 몰아주며 노(老)정객의 '결단'을 뒷받침했다.

하나로국민연합 이한동(李漢東)후보는 자신의 지역구인 포천-연천에서도 8천3백66표(8.5%)밖에 못얻었다. 구사일생(九死一生)한 경우도 있다. 김영배(金令培)·유용태(劉容泰)의원이 바로 그들. 金의원은 "국민경선은 사기였다"고 했고, 劉의원은 당 사무총장으로 사사건건 선대위의 발목을 잡았다는 盧후보 측의 비판을 받았다. 盧후보는 단일화 성사 뒤 "과거는 묻지 않겠다"며 이들에 대한 대사면을 약속했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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