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노무현시대]중앙일보 여론조사 추이:盧 '鄭 파문' 직전 8.7%P 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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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난히도 변수가 많아 예측이 쉽지 않았던 이번 대선 결과를 중앙일보 여론조사팀(팀장 안부근 전문위원, 이주한 연구원)은 정확하게 예측했다. 특히 선거일 하루전에 터진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라는 돌발 상황을 만나서도 예측력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선거일이 임박한 14일(盧 42.2%, 李 35.3%), 17일(盧 43.0%, 李 34.3%) 조사에서는 각각 6.9% 포인트와 8.7%포인트 차이로 盧후보가 앞선 민심을 확인했다.

이무렵 상당수 여론조사 기관의 비공개 조사보다 상당히 큰 격차였다. 때문에 다수의 여론조사 기관이 선거 막판 당선자 예측에 심각한 혼란을 겪었지만 중앙일보는 일찌감치 당선자와 최종 득표차이를 계산해낼 수 있었다. 安위원은 선거 당일인 19일 "鄭대표의 지지철회로 盧후보는 5∼6% (약 1백20만∼1백50만) 정도의 표를 잃었지만, 민노당 권영길 후보의 지지층 가운데 盧후보의 낙선을 우려한 1∼2%(25만∼50만) 안팎의 표를 흡수해 결국 2~3%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과적으로 최종 투표결과와 거의 비슷한 수치를 제시한 셈이다.

3∼5월의 노풍(盧風)과 7∼10월의 정풍(鄭風)으로 인해 이회창-이인제, 이회창-노무현, 이회창-정몽준 등의 구도로 전전하던 선거구도는 11월 25일의 盧·鄭 후보단일화로 일단 李-盧 양강 대결로 정리됐다.

단일화 직전의 1강2중 구도는 이회창 후보의 무난한 승리를 예상케했다.중앙일보 11월 9일 조사는 李후보 36.8%, 鄭후보 21.8%, 盧후보 21.1%로 확실한 1강2중이었다. 하지만 단일화 성사는 이 구도를 일거에 흔들어 놓았다. 당초 鄭후보 표 셋중 둘은 盧후보에게, 한표는 李후보에게 흩어져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李후보가 유리할 것이란 가설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단일화는 그야말로 노풍(盧風)과 정풍(鄭風)의 결합이었다. 단일화 직후 26일 조사에서 盧후보 42.7%, 李후보 35.2%로 盧후보 우세였다.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금지된 선거기간 내내 실시된 중앙일보의 조사에서 盧후보는 李후보를 6%포인트 이상 앞서갔다. 이무렵 정치권 일각에서 '숨어있는 표' 라는 말이 유행했다. 특정후보 지지자들의 의사가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이것은 두 후보 간의 격차를 줄인 판별분석 자료와 함께 판세분석에 혼란을 준 요인이 되었지만 중앙일보 여론조사팀은 흔들리지 않았다.

盧·鄭 단일화는 승부의 분수령을 40% 안팎에서 50% 안팎으로 끌어올렸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97년 15대 대선에 이르기까지 승패는 모두 40% 선에서 가려졌다. 이것은 인구가 많은 특정지역의 동원만으로도 선거가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50% 가까운 표를 얻어야 하는 승부는 지역 이외의 변수를 필요로 한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도 지역은 여전히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영·호남 지역 이외 지역에서의 자유투표를 예고했다. 연령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단일화 이후 여론조사에서 세대별 지지도 차이가 극명해졌다. 중앙일보의 12월 17일 조사에서 盧후보는 20대(54.8% 대 22.8%)와 30대(47.2% 대 27.4%)에서 李후보를 두배 가량 앞섰다. 李후보는 40대와 50대 이상에서 각각 36.9% 대 35.8%와, 49.2% 대 33.5%로 강세였다.

이하경 기자

ha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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