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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선 사건'과 美측의 訪日 사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이번 주 들어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은 미국인이 있다.

지난해 2월 미국 하와이 부근에서 실습교육 중이던 일본 에히메(愛媛) 현립 우와지마(宇和島)수산고 실습선과 충돌한 미국 핵잠수함의 함장이었던 스콧 워들(43)이다. 잠수함이 갑자기 떠오르는 바람에 실습선에 타고 있던 학생·교사 35명 중 9명이 사망했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 발생한 이 사건은 즉각 미·일 간 최대 현안으로 부각됐다. 부시 대통령은 사건발생 다음날 일본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등 발빠르게 성의를 보였다. 미 해군은 지난달 피해자들과 16억7천만엔을 배상키로 합의, 적어도 법적인 문제는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일본 내 피해자·가족들의 '한'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런 워들이 지난 15일 뒤늦게 일본을 찾아 우와지마 수산고를 방문했다. 사실 희생자 가족 다수는 워들의 사과방문 소식에 "너무 늦게 온다""아픈 기억만 되살아난다"는 반응이었고, 실제로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워들은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한 데 이어 16일에는 도쿄(東京)에서 숨진 학생 중 한명의 부모를 만나 머리 숙여 사죄했다. 워들이 위령비 앞에서 애도하며 헌화하는 장면과 생존 학생에게 울먹이면서 "나도 당시 실습선에 타고 있어 당신들과 함께 사고를 당했으면 차라리 좋았겠다는 심정"이라고 사죄하는 내용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미 해군에서 전역한 워들은 방일에 앞서 주일미군으로부터 "일본에 가면 체포될 우려가 있다"는 '경고'를 받았으나 무시했다. 워들과 함께 방일한 변호사는 16일 "주일미군 법무담당관으로부터 '민간인인 워들은 미·일 지위협정의 보호대상이 아니어서 일본 당국에 체포될 수 있다. 방일을 보류하라'는 e-메일을 받고 워들에게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밝혔다.

서로 다른 국가나 국민이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상응하는 개선조치를 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day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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