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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문세광 사건 때 한·일 단교할 뻔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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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으로 한국과 일본은 한때 단교 직전의 위기까지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통상부는 20일 이 같은 사실 등이 포함된 문세광 사건과 관련한 각종 면담 기록과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특히 문서는 부인 육영수 여사를 흉탄에 잃은 박 대통령이 수사 협조에 미온적인 일본에 대해 격분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74년 9월 19일 일본이 특사로 파견한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자민당 부총재와 청와대 서재에서 1시간45분 동안 만났다. 박 대통령은 시나 부총재에게 "일본이 우리를 우방으로 생각한다면 상중에 있는 대통령 가족이나 국민이 슬픔과 분노에 차 있는 이 시기에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법.정치.외교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한 발언은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힐난했다.

또 "한국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일본 청년이 한국 내 불법단체의 배후 조종을 받아 한국 정부가 발행한 여권을 갖고 일본에 건너가 한국 경찰이 분실한 총기로 일본 천황이나 총리대신을 저격하다가 그 결과로 황후폐하나 총리 부인을 살해했다면 일본은 한국 정부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할 것이냐"고 따졌다. "금번 일본 측 태도는 한국을 너무나 무시한 태도"라고 비난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조총련에 대한 강력한 단속도 촉구했다. "모든 범죄의 근원이 조총련이고 한.일 간 이간을 책동하는 것도 조총련인데 왜 조총련을 그렇게 비호하고 두둔하느냐. 조총련에 치외법권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조총련이 일본 국내에서 지금과 같은 대한 파괴 및 전복공작을 계속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우리 정부의 견해를 분명히 밝혀둔다"며 "만약 불행하게도 이런 사건이 재발할 시에는 양국의 우호관계에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호통을 쳤다.

이에 대해 시나 특사는 "건드리지 않으면 말썽이 없다는 격언에 따라 조총련을 종기 다루듯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으나 본인은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한.일 양국은 이후 일본이 조총련에 대한 규제를 약속하는 내용이 적힌 이른바 '시나 메모'를 교환했다. 갈등은 양측의 시각 차이에서 비롯됐다. 일본은 문세광과 조총련이 직접 연계돼 있다는 증거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범으로 지목된 김호룡 조총련 오사카 이쿠노니시(生野西)지부 정치부장에 대한 한국 측의 수사 요청을 거부했고, 이에 박 대통령이 격노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에 "일본이 수사에 협조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 측 반응은 차가웠다. 하비브 국무부 차관보는 "한국의 방위는 일본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만큼 한.일 관계가 깨지면 한국 방위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태는 결국 미국의 중재로 봉합됐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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