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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 생존 위한 날갯짓 … 철새처럼 여름방학 대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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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소정(21·여·강원대 3)씨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박지혜 인턴기자]

성인 남자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접이식 간이침대, 무릎 높이의 미니냉장고 등이 빽빽하게 들어찬 7㎡(2평) 남짓한 방. 서울 강남구 논현동 뒷골목에 위치한 한 고시원의 풍경이다. 이소정(21·가명·강원대 산림바이오소재공학 3)씨는 두 달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이씨는 휴학까지 하고 상경했다.

“기업은 대부분 서울에 있잖아요. 지방대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 나온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니까 불안하죠.”

이씨는 내년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갈 계획이다. 상당한 수준의 토플 성적을 받아놔야 한다. 하지만 이씨가 사는 강원도 춘천시엔 여러 개의 강좌를 갖춘 대형 어학원도, 잘나가는 스타 강사도 없다. 이씨는 “서울행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함께 서울에 올라온 친구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여름,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 대이동에 나섰다.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취업문을 뚫기 위해 필요한 ‘스펙(자격요건)’을 쌓기 위해서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원래 보금자리를 떠나 이동한다는 점에서 ‘철새족’이라 불린다.

이씨는 전형적인 파랑새형이다. 낯선 서울에 올라와 고시원 생활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자신의 둥지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파랑새를 닮았다.

김정우(23·대구대 신문방송학 3)씨는 인턴 경험을 쌓기 위해 상경했다. 지난달부터 이달 13일까지 한 달여간 한 케이블방송국에서 TV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30㎡(10평) 남짓한 사촌형의 원룸에서 함께 생활했다. 김씨는 “취업하려면 인턴 경험이 필수적인데 지방에서는 기회가 많지 않아 서울로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파랑새형의 서울살이는 팍팍하다. 이소정씨의 경우 한 달 생활비만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학원비와 교재비·고시원비만 70만원 넘게 들기 때문이다. 이씨는 “1000만원 등록금 시대라고들 하는데 방학 때마저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는 것 같다”며 “아낄 수 있는 게 식비뿐이라 저녁은 고시원에서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고생스러운 서울생활을 감행하는 이유가 있다. 김씨는 “지방대 출신이라 불이익을 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일해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PD 지망생인 그는 최근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자신이 만든 영화를 출품했다. 김씨는 “예전 같았으면 출품할 생각도 못 했을 텐데 서울에서 현장경험을 하면서 그만큼 성장한 것 같다”고 했다.

◆‘유턴’하는 뻐꾸기형=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최하나(26·여)씨는 지난 5월부터 국제인권기구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최씨는 현지인 못지않은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는 현재 무급 인턴이다.

최씨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 취업이 힘들어졌다. 국내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생은 한국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편견이 있는 만큼 국내에서의 인턴 경험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유학생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유턴 취업’이 늘고 있다. 국내 대학생들의 ‘둥지(일자리)’로 날아오는 뻐꾸기형이 증가하는 것이다. 실제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에는 최씨 외에도 3명의 해외파 인턴사원이 더 있다. 전체 인턴사원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취업정보업체 인크루트에 따르면 2008년 이후 국내에 취업하는 유학생 숫자는 분기마다 6% 정도씩 늘고 있다. 인크루트 정재훈 팀장은 “경제위기로 현지 취업이 어려워지자 영어라는 경쟁력을 살려 국내 기업에 취업하려는 유학생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홍성준(27)씨는 지난달 부산항공에 입사했다. 가족과 여자친구가 반대했지만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쟁력 있는 회사라면 지방에 있다고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대학도 대이동 도와=다음 달부터 4개월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비정부기구(NGO) ‘로버트슈만재단’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 주올림(22·여·연세대 경영학 3)씨는 “학교 내 EU센터와 글로벌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연세대 글로벌인턴십 프로그램은 해외 인턴을 원하는 학생에게 외국의 정부기관이나 기업체 인턴 자리를 소개한다.

서울대는 아예 관련 수업을 개설했다. ‘글로벌 인턴십’이란 이름의 강의를 통해 영문지원서 작성법과 영어면접 대응법 등을 가르친다. 한양대는 2002년부터 해외 인턴십 참가 학생들에게 왕복 항공료와 생활 지원금 150만원을 지원한다. 서강대는 인도네시아 산타 다르마 대학과 MOU를 체결하고 매년 10여 명의 학생들을 현지 기업으로 보낸다. 정부도 중국어·독일어·스페인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대학생들을 뽑아 해외 기업에 인턴으로 파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정선언·박정언 기자·김지은(광운대 3)·조혜랑(이화여대 4) 인턴기자
사진=박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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