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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중앙시평

통일을 먼저 이야기했어야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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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쩌면 통일의 당위성은 너무도 자명한 것이어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탓인지 모른다. ‘실용’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대통령이라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보다는 통일을 이루어낼 현실적 수단인 세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대통령은 너무 실무적으로만 말했다. 아니면, 최소한 덜 친절했다.

그러다 보니 불쑥 꺼내진 발언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머리는 자르고 꼬리만 이야기한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통일 대비 재원으로 따지자면 세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채권도 있고, 기금도 있다. 공공요금 인상도 있고, 통일복권을 발행할 수도 있다. 정부 예산을 절약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며, 외국 차관과 지원도 활용해야 한다. 국유재산 매각도 재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왜 이 시점에서 비용 부담을 논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숱한 방법 중의 하나만 언급한 까닭에 느닷없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고, 그래서 갑작스럽다는 반응들이 다수인 것이다. 하긴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구체적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통일세 언급이 적절한가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하고, 주무부처인 통일부나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 역시 통일세 발언에 당황하는 것을 보면 일반인의 당혹감이야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발언이 통일을 현실의 문제로 인식할 것을 촉구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바람직하다. 사실 요즈음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통일은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나의 문제’도 아니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란 단순한 노랫말일 뿐 현실적 절박함이란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통일은 먼 미래 언젠가의 일에 불과하다. 정부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동안 통일은 통일부만의 업무이지 다른 부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6월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이라며 보고된 2040년을 목표로 한 국가전략에도 통일 문제는 빠져 있었다. 30년 후를 내다본다면 당연히 통일을 염두에 두었어야 하고, 통일이 된다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대통령의 발언 중 ‘이제’라는 부사에 특히 주목한다. 대통령은 통일세를 언급하면서 통일의 “그날을 대비해 이제 현실적인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제’라는 말이 없어도 무방한 문장인데 굳이 그 단어를 넣은 이유는 “그동안 우리는 통일 문제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반성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국민과 내각을 향해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가 통일을 현실의 문제로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우선 상황이 그렇다. 이미 북한은 정권 수립 이래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실정에 돌입했다. 김정일의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으며, 세습체제의 권력기반이 얼마나 단단할지도 미지수다. 계획경제 시스템은 총체적 난국에 처한 지 오래다. 게다가 핵 실험과 천안함 사건으로 국제적인 경제제재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중국이 정치적·경제적으로 지원한다고 해도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결국 북한의 불안정성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통일의 필요성 측면에서도 그렇다. 통일은 비용보다 편익이 훨씬 더 크다. 통일비용은 언젠가는 더 이상 소요되지 않지만, 통일편익은 통일 한반도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일이 늦어질수록 통일비용은 커지는 반면 통일편익을 누릴 시간은 적어지고 분단비용은 계속 지출해야 한다. ‘바른 통일’뿐만 아니라 ‘빠른 통일’도 그만큼 이익인 것이다.

통일과정에 ‘자주’가 우선인지, ‘동맹’이 우선인지도 정리해야 한다. 이분법이 아니라면 어떤 조합이 보다 효과적이면서도 가장 우리의 국익에 맞는지도 토론되어야 한다. 통일 한반도가 추구할 가치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상황 판단이나 준비의 내용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또 입장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서로 다른 그 생각을 함께 논의할 때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통일세 언급은 통일을 ‘우리 모두의 오늘의 문제’로 보자는 인식의 측면에서는 뜬금없는 것이 아니라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대통령은 ‘세’ 이전에 ‘통일’을 논의하자고 했어야 한다. ‘세’만 이야기함으로써 오히려 정작 핵심인 ‘통일’이 가려지고 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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