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찍어주고 시험중 교사가 답풀이 어렵게 출제하면 학부모 원성 쏟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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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선 고교의 '내신 부풀리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교사들이 시험 직전에 예상문제를 찍어주는 것은 예사고, 일부 학교에서는 시험 도중 교사들이 학생들의 문제풀이를 돕기까지 한다.

내년도 수시모집 선발인원이 대학별 정원의 최고 50%까지 늘어나면서 내신 부풀리기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대·이대·중앙대·경희대·외대 등 대부분의 대학이 수시모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부 성적을 절대평가인 평어(수·우·미·양·가)로 반영(고대·이대는 석차백분위와 함께 반영)하기 때문에 일선학교들이 '수·우'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 문제 찍어주세요"=지난주 기말고사를 치른 서울 K고는 2학년 수학시험에서 시험 직전 '찍어준' 23개 문제 중 20개를 숫자만 바꿔서 그대로 출제했다. 서울 S고는 영어·수학 등 주요과목의 시험문제를 기출문제로 구성된 '족보'에서만 내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득점을 했다. 심지어 경기지역의 한 고교는 시험 도중 교사들이 '문제가 잘 이해되지 않으면 물어봐라'고 하면서 사실상 문제 푸는 방법을 일러주기도 했다.

문제를 어렵게 내거나 '찍어주지' 않을 경우 학생·학부모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서울 D고 영어과 姜모 교사는 "기말고사 문제를 모의고사 수준으로 냈더니 '내신 떨어져 대학 못가면 책임질 거냐'는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어떤 학교에선 평균 95점을 받은 학생이 전교 80등(계열인원 4백10명)에 불과한 기현상도 벌어졌다. 일부 학교는 내신 부풀리기는 물론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 확보를 위해 과목별로 어려운 문제를 배점을 낮춰 섞어넣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결국은 학생들에게 불리=내신 부풀리기로 학생부 성적이 원래 실력보다 좋은 고3 재학생들이 양산되다 보니 수시모집에 예비합격을 하고도 수능등급 제한에 걸려 탈락하는 학생들이 속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2학기 수시모집에서 대학별 수능등급에 못미쳐 최종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예비합격생의 비율이 대학별로 최고 60%에 달했다.

정일학원 신영 평가이사는 "내신 부풀리기는 학생들을 성적 착각(錯覺)에 빠뜨리게 하는 것은 물론, 대학들의 고교학생부 불신을 조장해 편법적인 지필고사, 고교등급제 시행 등 입시를 파행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의 성적 평가는 학교장의 재량이기 때문에 내신 부풀리기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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