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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휴전 후 첫 북 해역서 선박 구조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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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20일 해경 경비함 삼봉호(5000t급)가 북한 해역에서 침몰한 파이오니아호 선원들에 대한 수색작업에 나섰다.[연합]

동해 바다에서 20일 긴박하게 펼쳐진 한국 화물선 파이오니아나야호 선원 구조작업은 휴전 이후 북방한계선(NLL) 이북에서 이뤄진 최초의 해상 구조작전이다. 북한 영해는 아니지만 북한의 허락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사고가 발생했으나 북한이 우리 측 구조협력 요청을 받아들여 우리 해양경찰 함정이 처음으로 구조작업을 펼칠 수 있었다.

◆ 한.러.일 3국 공조=파이오니아나야호 침몰 지점은 NLL 북방 80마일로 강원도 거진에서 동북쪽으로 160마일, 함경남도 신포에서 동쪽으로 141마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185마일 떨어진 곳이다.

사고 무렵 이 해상에는 최고 풍속 16m의 강풍이 불고 4~5m의 높은 파도가 몰아친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5시25분쯤 침몰한 파이오니아나야호는 자동으로 조난신호를 보냈고 이는 우리 해경, 러시아 국경수비부, 일본 해상보안청에 곧바로 접수됐다.

이에 따라 해경은 오전 7시10분 독도 해역을 순찰 중이던 1003함(1000t급)을 급파했으나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회항시켰다. 일본 해상보안청도 오전 7시30분 경비함을 출동시켰으나 기상이 나빠 오전 10시쯤 뱃머리를 돌렸다. 러시아 국경수비부는 소속 함정 3척을 사고 해역에 긴급출동시켜 생존자 수색을 벌이게 했다.

해경은 다시 오후 1시20분쯤 특수구조대원 10여명 등 70여명의 경찰이 탑승하고 대기하던 5000t급 삼봉호를 급파했으며 이 선박은 오후 8시30분쯤 현장에 도착해 수색에 들어갔다. 해경 수색용 비행기 챌린저호도 출동해 사고 해역에서 폭 4㎞, 길이 9㎞의 엷은 기름띠를 발견했다. 하지만 사고 해역에는 초속 15~18m의 강풍이 불고, 4~6m의 파도가 일어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인근 해역을 지나던 러시아 선박이 2등 항해사 이상민(24)씨 등 일부 선원을 발견해 구조했으며 나머지 선원들에 대한 수색에 들어갔다.

◆ 해경, 북한 해역으로 처음 출동=해경은 사고를 파악하자 즉각 구조작업에 나서기 위해 신속하게 대응했다. 우선 '북한 수역 내 민간선박 조난 대응 매뉴얼'에 따라 침몰사고 발생 직후 유관 부처에 조난 사실을 알렸다. 통일부에는 "우리 측이 북측 지역에서 구조활동을 벌일 예정이니 북측에 협조를 통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통일부는 낮 12시40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판문점 연락사무소 연락관 간 통화와 접촉을 시도했다. 연락관 접촉을 세 차례나 한 이유는 북측이 우리 선박의 제원과 항로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은 우리 경비정이 무기를 탑재했을 가능성에 대비, 군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이에 따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의 협조 요청이 있은 지 40분 만인 오후 1시20분 북측의 대답이 돌아왔다. "귀측(남측) 조난 선박과 관련해 경비정이 우리 측(북측) 수역으로 들어오는 데 동의하며 최대한의 편의 제공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북한 해역에서 우리 선박이 조난당한 것도, 북한이 우리의 구조협력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처음이었다.

통일부는 이를 곧바로 해경에 통보했고, 해경은 대기 중이던 5000t급 삼봉호를 사고 지점으로 파견해 본격적인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동해=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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