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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문세광 사건] 문세광 네번째 총알에 육영수 여사 피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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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1974년 8월15일 국립극장의 제29회 광복절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이 경축사를 낭독 중인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 옆자리의 육영수 여사 머리에 총상을 입혀 살해했다. 총을 빼든 경호원 박상범씨는 훗날 김영삼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냈다.[중앙포토]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23분. 광복절 29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던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사를 읽고 있었다.

"조국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 방법으로 이룩돼야 한다…."

바로 그때.

"탕…. 탕, 탕탕, 탕탕탕."

갑자기 총격전이 벌어지고 식장은 수라장이 됐다.

단상 의자에 앉아 있던 육영수 여사가 쓰러졌다. 저격수 문세광은 곧바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정부는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사건의 전말을 파헤쳤다. 20일 공개된 문서에는 이때 파악한 현장 상황과 범행 모의 경위 등이 비교적 상세히 적혀 있다.


◆ 현장 상황=문세광은 이날 오전 8시쯤 조선호텔을 나와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검문을 수월히 피하기 위해 미리 포드 20M 검은색 승용차를 빌려놓았다. 극장 입구를 무사히 통과한 문세광은 식장 입구에서 한 차례 검문을 받았지만 일본어를 사용하며 귀빈 행세를 해 식장에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기념식이 시작되고 얼마 뒤. 왼쪽 열 맨 뒷좌석(B열 214번)에 앉아 있던 문세광은 준비해간 38구경 스미스 앤드 웨슨 리볼버 권총을 꺼내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방아쇠를 잘못 건드려 첫 번째 총탄은 자신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직후 문세광은 다리를 끌며 통로를 따라 곧장 연단으로 접근했다. "탕" 두 번째 총알이 박 대통령이 서 있던 연단 왼쪽에 박혔다. 박 대통령은 즉각 자세를 낮춰 연설대 뒤로 몸을 숨겼다. 세 번째는 불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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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네 번째 총알이 귀빈석에 앉아 있던 육 여사의 머리 오른쪽에 명중했다. 한 참석자가 문세광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지만 문세광은 비틀거리며 또 한발을 발사했다. 이 총탄은 연단 뒤 태극기에 박혔다. 불과 5~6초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때야 좌석 앞쪽에 앉아 있던 경찰관들이 문세광의 머리를 권총 손잡이로 내려친 뒤 이중삼중으로 덮쳤다.

육 여사는 곧장 앰뷸런스에 실려 인근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돼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오후 7시 결국 숨을 거뒀다.

문세광은 재판에 회부돼 1~3심에서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사건 발생 127일 만인 그해 12월 2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남는 의문점=그간 제기된 가장 큰 의문점은 "과연 문세광이 쏜 총알이 육 여사를 명중시켰나"였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당시 현장 비디오 등을 판독해보면 문세광이 쏜 다섯발 중 한발은 연단 위 천장을 맞혔다"고 주장한다. 허벅지.연단.태극기로 향한 3발과 불발탄을 제외하면 남는 건 한발. 그 한발이 천장을 맞혔다면 육 여사를 쏜 총알은 어디에서 발사됐느냐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선 모두 7발이 발사됐다. 두발이 더 있는 것이다.

그중 한발은 경호원이 문세광을 겨냥해 쏜 것으로 빗나가 D열 합창단원석에 앉아 있던 여고생을 맞혔다. 그래서 나머지 한발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으나 최종 수사결론은 '문세광의 네 번째 총알'이 육 여사를 숨지게 한 것으로 내려졌다.

당시 수사 당국 주변에서는 한동안 '제3의 저격수'가 있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나돌기도 했고, 조총련 등에서는 '음모설'을 유포하기도 했다.

문세광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장에 비표도 없이 검문을 무사 통과한 점, 김포공항으로 입국할 때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권총을 숨겨왔다면서도 전혀 적발되지 않은 점, 일본인 명의의 위조 여권으로 재일동포 비자를 받아 입국했다는 점 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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