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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디자인센터 전시회… 2005년 제품美學을 미리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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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유리를 소재로 삼은 냉장고-. 그래서 속이 다 들여다보인다는 얘기는 아니다. 유리를 산화해서 소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검푸른 색인 데다 속도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도 달라진다. 금속을 유리와 같이 썼기 때문에 신비감과 고풍스런 전통도 느껴진다.

프레임을 전통적인 자개장 문양으로 처리한 TV도 있다. 대부분의 TV 프레임은 은색의 금속(메탈 실버)으로 돼있다. 고급스러움을 주기 때문에 아직도 인기있는 소재다. 그러나 가전제품 소재가 거의 모두 메탈 실버이므로 차별대우를 원하는 일부 소비자의 기호에 안맞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금속에 자개장 문양을 박고, 색깔도 검정색으로 처리한 프레임을 사용한 TV가 전시됐다. LCD모니터를 나무 프레임으로 쓴 노트북PC도 선보였다.

지난 4일 경기도 분당의 코리아디자인센터 빌딩 6층에서 열린 디자인 전시회는 이런 제품들이 전시됐다. 각 회사들이 자기 제품을 자랑하는 일반 전시회는 아니었다. 삼성전자·LG전자·태평양·현대자동차 등 디자인을 중시하는 업종의 대표선수들 8개사가 전국경제인연합회 주관으로 6개월여 공동 연구를 한 결과물들의 전시회였다. 게다가 오는 2005년의 소비자들에게 인기있으리라고 예측한 디자인의 전시회였다. 전시회 이름도 '디자인 트렌드 2005'였다.

공동연구에 참여한 고은영 삼성전자 책임디자이너는 "향후 디자인의 주제는 감성"이라면서 "어떤 소재와 컬러 등을 사용해 고급스러움과 신비감을 조성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해리포터류의 '신비'소설 등이 유치하긴 하지만 현실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안도감을 준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디자인으로 음식맛도 살려라=전자레인지는 LG전자의 '효자'상품이다. 최근 출고 기준으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디자인 덕분이 크다. 나라·지역별로 음식문화 분석을 한다. 가령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국가들은 주식 메뉴가 육류임을 감안해 전자레인지에 별도로 고기 굽는 회전식 기구를 장착했다. 레인지 모양도 다르다. 남미 사람들은 라운드 타입의 볼륨감 있는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점을 파악해 그런 레인지를 수출하고, 미국엔 직사각형 모양의 딱딱한 디자인의 레인지를 판다.

MP3플레이어를 만드는 중소기업 디지탈웨이는 디자인의 차별화로 다른 제품과의 차별화를 선언한 회사. 가령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직사각형인 점을 감안, 정사각형 제품을 출시했고, 장식품으로 쓸 수 있도록 크기를 손가락 하나 정도로 줄인 후 무게를 29g으로 대폭 낮춘 목걸이용 제품도 내놓았다. 까다로운 일본 시장에서 1년반 동안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비결이자,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회 산업디자인진흥대회에서 디자인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이유다.

화장품업체인 ㈜태평양은 감성 위주의 디자인을 표방하고 있다. 제품 특성상 품질보다는 소비자의 감각적 충동이 제품 판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 감성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고객 중심의 디자인 경영'을 한다. 소비자 취향을 세밀히 조사하고 품평도 받는 등 디자인에 고객의 욕구를 반영하는 점을 평가받아 최근 산업디자인진흥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제품 경쟁력은 디자인에서 나온다=기업들은 "살 길은 디자인에 있다"고 이구동성이다. 많이 드는 예가 애플의 '아이맥(i-Mac)'컴퓨터다. 속이 다 보이도록 투명하게 만들고, 더 예뻐보이도록 우윳빛을 넣는 디자인을 선택했다.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났다가 회사가 위기국면을 맞자 컴백해 내놓은 야심작이었다. 개발 당시엔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애플의 고유성을 찾겠다는 잡스 회장의 고집으로 출시돼 대히트를 했다.

LG전자 디자인연구소장인 김철호 부사장은 "디자인은 기업경쟁력의 중추 요소"라고 단언한다. 기능과 품질이 같더라도 디자인이 다르면 값도 달라지고, 판매량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고객의 생활에 편리함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디자인에 투자를 많이 한다.

현대자동차는 2년여 전에 디자인 시스템을 디지털화했다. 종래 수작업으로 하다가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영상 품평장을 아시아 최초로 구축했다. 지난해 11월엔 4백억원을 투자해 미국 현지에 '캘리포니아 디자인 앤 테크니컬 센터'를 구축했고, 독일·일본 디자인센터 등과 연계해 글로벌 디자인 연구체제도 갖췄다. LG전자 역시 유럽 디자인센터를 필두로 미국·일본·중국·이탈리아 등의 5개 디자인센터를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태평양은 소재와 컬러가 중요하다고 인식, 소재를 중국과 유럽에서 아웃소싱하고 있고, 미국 컬러 마케팅그룹·한국 표준연구소 등과 정보 교류나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고 있다.

최고경영자들의 관심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은 전자제품에 응용하기 위해 얼마전 세계 유명 자동차업체들의 디자인 센터를 출장 방문했고, LG전자 구자홍 부회장은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 과정을 수료할 정도로 열심이다. 전자업체인 디지탈웨이의 우중구 대표는 벤치마킹 대상은 다른 전자업체가 아니라 디자인으로 유명한 루이뷔통이나 뱅앤올슨 등과 같은 기업이라고 언급할 정도다. 그러나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다. 전경련 박창현씨는 "상당수 국내기업들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동 연구의 성과물들을 내놓고 갖다 쓰라고 해도 전시회에 구경조차 오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는 얘기다.

김영욱 전문기자

youn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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