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홍 철학'재평가 작업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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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내년 열암(巖)박종홍(朴鍾鴻;1903~1976·전 서울대 교수·사진)의 탄생 1백주년을 앞두고 그의 철학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히 진행될 움직임이다. 우선 비판철학회(회장 양재혁)가 마련한 '박종홍 철학비판'심포지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4일 오전 10시부터 성균관대 경영관 첨단강의실 402호에서 열리는 행사에서는 박종홍의 철학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있을 예정이다. '파시즘 문서로서의 국민교육헌장'(홍윤기 동국대 교수), '열암의 초기철학'(김재현 경남대 교수)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양재혁 성균관대 교수가 발표하는 '박종홍과 그 황국(皇國)철학'이라는 기조 발표에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여기서 양교수는 열암 철학의 핵심을 유년시절서부터 배워온 '중용(中庸)의 중화(中和)'의 논리에 있다고 규정하고 이것이 '천명(天命)'이라는 숙명론으로 이어져 '기득권 지배체제의 옹호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유교 엘리트주의에 탐닉한 열암이 결국 '일제에 순응하고 미군정에 찬성하였으며 급기야는 박정희를 찬양하면서 반공이념에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논리다.

이번 학술행사에서 나올 비판적 견해에 대해 열암기념사업회(회장 소광희)측은 정확한 소개에 초점을 맞추려는 추세다. 김형효 서울대 교수, 백종현 서울대 교수, 표재명 고려대 교수 등은 내년 열암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하는 논문집 『현실과 창조』를 통해 열암 해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예정이다. 소광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열암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인격적인 교유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평가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특히 열암을 서울대 중심의 주류 철학계에 대한 비판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70년대부터 간간히 제자들 사이에서 이뤄졌던 '훌륭한 스승이냐 아니면 파시즘에 영합한 철학자냐'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세대간, 이념간, 학교간의 생각의 차이와 맞물려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열암 박종홍=조선미술사, 퇴계교육사상 등 전통 미학과 철학을 서양철학과 결합한 독보적인 철학자로 꼽힌다. 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한 그는 국민교육헌장 제정에 깊이 관여하고 박정희 대통령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을 역임하는 등으로 지식인의 현실참여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wjsan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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