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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스웨덴 스톡홀름 '숲의 묘지': 천국에 잇닿은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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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빛과 돌로만 집을 짓던 시절이 있었다. 현란한 건축언어가 난무했던 20세기에, 현대건축을 대표하던 천재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중세 때 건축을 돌아보며 '진실의 건축'이라고 불렀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친구'인 돌은 더 보탤 것이 없는 건축의 단어이자 문장이 되었고, '빛과 그림자는 진실·평온·힘을 지닌 건축의 확성기'였다. 그래서 르 코르뷔지에는 "조잡한 콘크리트의 시대인 요즘에 우리의 뜻대로 가기만 한다면, 이 훌륭한 만남에 환영하고 축복하며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대한 볼거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건축물에 가려 신성한 제 모습을 감추고 있던 미지의 유럽 건축을 네 번에 걸쳐 찾아가 본다.

편집자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들이 길을 만들었다. 나무들이 벽처럼 선 좁고 긴 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면 나지막한 언덕이 펼쳐진다. 집은 보이지 않는다. 땅이 저절로 사람들을 이끈다.

부드럽게 휘어진 소로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오른쪽 하늘 위로 나무 열두 그루가 기둥을 이루고 서 있다. 계단을 따라 오른다. 둥글게 둘러선 그 나무 아래가 죽은 이를 떠나 보내는 영결식장이다. 타다 남은 초와 애도의 눈물 방울 그렁한 꽃 화분들이 올망졸망 담을 이뤘다. 풍경이 건축이 되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숲의 묘지'는 풍경을 만드는 것도 건축임을 보여주는 희귀한 공간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는 순환의 질서가 '화해와 부활'로 나타났다. 제 명을 다한 육신을 땅에 파묻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일상일 뿐이다. 먼저 간 이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이끄는 화해의 과정은 나중 갈 이에게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숲의 묘지'에서 낱낱의 죽음은 인류 전체를 묶는 풍경으로 부활했다. 숲속 나무 아래 제각기 꽃이나 돌로 제 얼굴을 덮고 조용하게 누워 있는 무덤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죽음은 우리 몸을 땅으로 되돌려주는 영적인 친구로 다가온다. 건축가가 하늘과 땅과 나무와 물을 빚어 만든 그 '정신적인 풍경'은 산 자를 위한 시각적인 노래라 할 수 있다.

그 노래를 따라 길게 뻗은 소나무 길을 밟아가면 숲이 끝나는 곳에 비로소 작은 집 한 채가 나온다. '부활의 교회'다. 교회에는 창이 하나뿐이다. 창을 뚫고 들어오는 빛은 오로지 관 위에 떨어진다. 이 집에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망자는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몸을 버리고 혼으로 부활한다.

교회를 나오면 다시 숲과 언덕이다. 죽은 자와 산 자가 헤어지는 갈림길에 벌판이 놓여 있다. 얼어붙은 겨울 광야에 비스듬히 빛이 기운다. 땅이 치유하지 못할 아픔이 있을까. '숲의 묘지'는 자연을 더 자연답게, 건축을 더 건축답게 만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집이다.

스톡홀름=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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