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WTO 가입 1년]안방 열었지만 '아직 만만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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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지 1년. 과연 국제무역 규범을 제대로 지킬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많이 사라졌다. 금융·자동차 시장 등 약속한 개방 일정을 총론에선 충실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각종 규제로 개방 속도와 범위를 늦추고 있다는 평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0일 중국 공산당이 농지거래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곧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허가 없이 농지를 사고 파는 실험적인 조치들이 실시될 것이란 전망도 덧붙였다. 토지는 모두 국가 소유며 도시지역에 한해 부분적으로 토지 거래를 허용해온 중국으로선 파격적인 발상이다.

장쩌민(江澤民)국가 주석은 지난 11월 당대회에서 농지를 상품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농촌의 도시화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농업국 관계자는 우선 농촌 공동소유지부터 거래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변화는 모두 WTO 가입에 따라 이뤄졌다. 2010년까지 단계적인 농업개방 약속을 앞두고 농촌을 개혁하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중국의 이런 변신 노력은 WTO 가입 1년 만에 미국을 제치고 중국을 세계에서 투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나라로 만들었다.

◇아시아 경제 주도=블룸버그 통신은 9일 중국이 WTO 가입 후 아시아 경제의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8%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네시아의 2배 이상, 싱가포르의 4배이상은 높은 성장률이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세계 경제의 우등생들이 모두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상황이어서 중국의 '나홀로 호황'은 더욱 돋보인다.

활기 넘치는 경제는 세계의 돈을 끌어모은다. 스광성(石光生)대외무역경제합작부 장관은 지난 4일 "올 외국인 직접투자액(FDI)이 실행액 기준으로 5백억달러를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2년 전 3천억달러가 넘던 미국의 FDI는 올해 4백40억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올 세계 FDI는 경기침체로 지난해보다 약 4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만 20%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중국에만 돈이 몰리면서 동남아 국가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한다. 중국 진출을 위해 소니는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철수했고 나이키는 동남아시아에서의 생산을 중단했다. 싱가포르의 23분의 1, 말레이시아의 25분의 1에 불과한 중국의 평균 임금이 외국의 돈줄을 중국으로 끌어들이는 주요인이다. 중국 정부는 올 국내총생산(GDP)이 사상 처음으로 10조위안(약 1천5백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빗장은 풀지만 실속은 챙긴다=인민은행은 지난달 외국은행의 위안화 조달 규모를 부채의 40% 이내로 규제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렇게 되면 외국은행들은 위안화 영업을 위해 자본금을 늘리거나 영업 규모를 줄여야 한다. 시장개방으로 외국은행에 영업권은 줬지만, 쉽게 돈을 벌도록 하지는 않겠다는 계산이다.

외제차 수입 관세를 최고 1백%에서 43.8%로 인하했지만 수입차 가격은 안떨어졌다. 세관이 수입쿼터를 잘 안내줘 수입차에 프리미엄이 붙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개방, 수입관세 인하 모두 WTO와 약속한 사항이다. 약속은 지키되 실리는 따로 챙기는 중국식 개방인 셈이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이정재 기자

yasi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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