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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왜 우리 공약 베끼나" 설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대선운동 기간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에 '공약 표절'시비가 불거지고 있다. 양당 모두 자신들이 먼저 내놓은 인기 공약을 상대 측에서 베끼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념 정당이 뿌리내린 구미 선진국에서도 선거전이 치열해지면 보수·진보 정당들의 공약이 중도노선으로 수렴되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엔 장기적 고려없이 일단 베끼고 보자는 식이 많다는 지적이다.

◇발끈한 한나라당=한나라당은 지난 8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가 군복무 기간을 4개월 단축하겠다고 발표한 것부터 문제삼았다.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 9월 22일 군 복무 2개월 단축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민주당 임채정(林采正)정책위의장은 "군 복무기간 단축 문제는 관계 부처는 물론 국민적 합의를 모아 심사숙고해 결정할 문제로, 특정 정당이 선심 쓰듯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고 비판했었다. 한나라당 임태희(任太熙)제2정조위원장은 9일 선거전략 회의에서 "당시 민주당 장전형(張全亨)부대변인도 '웬 선심정책이냐'고 말했는데 지금 와서 갑자기 4개월 단축안을 내놓은 이유가 뭐냐"고 꼬집었다. 남경필(南景弼)대변인은 "민주당이 12∼14일 실시되는 군 부재자 투표를 겨냥해 군심(軍心)을 잡기 위한 공약 베끼기"라고 주장했다.

또 任위원장은 "盧후보는 당초 경제성장률을 5%로 주장하다 이회창(李會昌)후보가 6%의 잠재성장률을 내놓으니까 거기에 무작정 1%포인트를 더해 7% 성장률 공약을 내놨다"며 "민주당은 공약의 출처가 어디인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한나라당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올린다는 공약이나 법정 선거홍보물에 미아찾기광고를 넣자는 아이디어 등을 민주당의 '커닝 사례'로 들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군 복무 단축이나 국방비의 경우 진작부터 정책자문 교수단의 내부 검토가 이뤄졌었고▶경제성장률은 지난 3월 경선 당시 5.2%로 봤다가 盧후보 집권시엔 공정한 시장경제가 이뤄지는 효과를 감안해 올려잡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역공 펴는 민주당=민주당도 맞불을 놓았다.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은 "우리가 미군 무한궤도차량 사고로 숨진 여중생 집을 방문한다고 6일 발표하자 李후보가 느닷없이 8일 일정을 바꿔 방문했다"며 가로채기 의혹을 제기했다. 盧후보가 지난 5일 네거티브 캠페인 중단을 선언할 때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사무총장이 똑같은 내용으로 급거 기자회견을 연 것도 마찬가지 사례라는 것이다.

정대철(鄭大哲)선대위원장은 李후보가 발표한 정치개혁안에 대해 "진작에 우리 당이 추진했던 정치개혁법안에 동참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盧후보 측은 지난 10월 고위 공무원 재산 형성과정 완전 소명 등을 골자로 한 정치개혁안을 내놨는데 李후보의 개혁안은 이의 아류작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장전형 부대변인은 "盧후보가 여성 일자리 50만개를 공약하자 한나라당이 갑자기 1백만개를 들고 나왔고,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입장이던 李후보가 盧후보를 좇아 당분간 유지 쪽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李후보의 여중생 집 방문은 이미 오래 전에 계획한 것이며, 李후보의 정치개혁방안이 민심의 호응을 얻으니까 터무니없는 모함을 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또 출자총액제한 문제도 李후보는 언제나 단계적인 완화를 주장했을 뿐이며 즉각 폐지를 말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강민석·김정하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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