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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삶 그리고 절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5면

영국의 계관 시인 테드 휴즈(1930∼98)가 어린 두 자녀를 위해 63년 썼다는 동화집이 번역·출간됐다. 휴즈는 자연계와 야생동물, 무의식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표범·까마귀 등을 소재로 동물의 야만성을 우주의 생명력과 연결시키는 시를 짓기도 했다. 동화에서도 그런 면이 드러난다.

'테드 휴즈의 철학 동화'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동물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동물들은 모두 "나는 앞으로 무엇이 될까"를 고민한다. 사자는 태어날 때부터 사자, 토끼는 태어날 때부터 토끼가 아니라 자라면서 훈련을 거듭하고 자기 길을 찾아간다. 그래서 동화는 휴즈의 창작임에도 불구하고 설화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동화 속 주인공 중 하나인 하이에나란 녀석은 '들개가 될 놈'인데 허황되게 '표범이 될 놈'의 일거수 일투족을 흉내낸다. 그러다 '들개가 될 놈'들에게도 배척받고 결국 표범도 되지 못한다. 표범만 쫓아 다니다가 사냥하는 법도 잊고 표범이 남긴 먹이의 찌꺼기나 얻어 먹는 신세가 된다. 스스로가 비참해진 하이에나는 '표범이 될 수 없다면, 표범이 표범이 된 것을 부끄러워하도록 만들어 주겠어'라고 마음 먹는다. 그래서 하이에나는 표범을 쫓아다니며 기분나쁜 고함소리를 내고, 히죽히죽 웃는다는 것이다.

모든 동물이 반드시 한가지 모습만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동물이 있었다. '한 가지 일에 열중하지 못하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당나귀'라고 불린 이 동물은 사자 연습 5분, 독수리 연습 5분, 황소 연습 5분 등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먹을거리를 구하는 게 문제였다.

이때 인간이 일을 해주면 맛있는 먹이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아침에만 잠깐 일을 해주고 나머지 시간은 동물되는 연습을 했다. 그러나 인간은 차츰 더 많은 먹이를 주겠다고 당나귀를 꾀어서는 하루종일 일을 시킨다. 결국 당나귀는 다른 동물로 변신하겠다는 생각은 허황되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과 사는 것에 안주하고 만다.

몸 속의 물을 뿜어내지 않고는 커져버리는 몸집을 감당할 수 없는 고래, 괴물의 눈물에서 탄생해 달콤한 것을 빨아들이지 않고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는 꿀벌, 하느님이 급하게 창조하시느라 피부를 못입혀 주었다가 나중에 껍데기를 만들어준 거북이 등 휴즈의 동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하나씩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 결점 때문에 다른 동물들에게 따돌림도 받는다. 그러나 동물들은 방황 끝에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 들이며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마무리짓는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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