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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는 鎭魂祭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군 무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반미'시위로 확산되고 있다. 네티즌들의 서울 광화문 촛불행진이 갈수록 열기를 더하고, 종교계의 단식 기도, 문인과 교사·연예계의 시국선언도 꼬리를 물고 있다.

지금까지 반미시위는 운동권 대학생과 일부 진보적 시민단체들에 국한돼 왔으나 최근의 반미시위 참가자들은 중·고생과 운동선수·연예인·주부 등 가위 범국민적이다. 특히 '광화문을 촛불로 가득 메우고, 평화로 미국의 폭력을 꺼버립시다'는 애틋한 호소까지 등장하고 있다.

미 군사법원의 무죄 평결 이후 여중생 압사와 반미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다. 무죄 평결은 양국간 사법체계의 차이에서 비롯됐고, 감성적으로 이에 접근하면 반미와 주한미군 철수로 비화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청소년들의 의식은 과거와 다른 측면이 있고, 또 일시적·일회성 성격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 양국 모두가 주목을 요한다. 우선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미국 앞에 당당하고 위축되지 않는다. 평화와 인권을 중시하고 그들의 자존심과 대등한 한·미관계를 염원한다. 미국의 오만과 일방주의에 쉽게 분노하고, 특히 남북 간 화해·협력이 가속되면서 미국이 분단 극복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도 갖고있다. 양국관계가 냉전시대의 동맹관계에서 탈냉전시대의 호혜·협력관계로 개편돼야 하며, 주한미군의 역할과 지위의 현실적 조정은 그 출발점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이들 청소년의 정서와 주장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갖는다. 그러나 국가 경영과 국익에는 감정과 정서만으로 풀 수 없는 현실 논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위가 억울하게 죽은 친구들의 넋을 애도하는 화해와 용서의 진혼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만의 하나 이 시위가 본의 아니게 과격해지거나 일부의 돌출 행동으로 예기치 못한 사태로 번져 나가서는 안될 것이다. 촛불시위는 무언(無言)의 진혼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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