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돈 언제쯤 들어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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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외국인들이 10월 이후 순매수로 돌아선 것은 세계적으로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동성 장세의 초기 단계다. "(우리증권 이철순 투자전략팀장)

"시중자금이 증시로 많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데 무슨 유동성 장세냐. 경기 전망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내년 2월까지 유동성 장세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래에셋 이종우 실장)

국내 증시의 현 상황이 유동성 장세인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표참조> 유동성 장세란 시중자금이 증시로 대거 유입되면서 돈의 힘으로 주가가 줄기차게 오르는 것을 말한다. 금리가 낮고 경기·증시 상황이 호전될 것으로 예상될 때 흔히 유동성 장세가 나타난다.

유동성 장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순매수 전환을 주요 근거로 제시한다. 외국인은 거래소시장에서 10월 10일 이후 약 2조9천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월별 순매수액은 10월 4천7백99억원, 11월 1조8천1백70억원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미국 테러사건 이후 외국인들의 '바이 코리아' 덕분에 국내 증시가 크게 올랐던 현상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월까지 외국인은 3조4천9백3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우리증권 李팀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지난달 초 금리를 0.5%포인트 낮추는 등 금융완화 정책을 내놓자 미국 경기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며 "최근 미국·한국 증시 동반상승도 풍부한 돈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세종증권 임정석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의 공격적인 순매수 추이로 볼 때 향후 외국인은 적게는 1조, 많게는 4조원 가량 순매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시중자금의 증시 유입은 더딘 상태다.

<그래픽참조>

지난 2일 현재 주식 관련 펀드 설정 잔액은 순수 주식형 9조5천5백9억원, 주식 혼합형 13조9천5백88억원으로 10월 말 9조7천6백6억원과 14조1천4백30억원보다 각각 2.1%, 1.3% 감소했다.

고객예탁금은 10월 말 9조7백46억원에서 소폭 증가해 3일 현재 9조4천3백6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증권담보대출을 실시하고 있는 한국증권금융의 대출 잔액은 지난 10월 말 2천7백44억원에서 지난달 말에는 2천6백99억원으로 줄었다.

동양종합금융증권 허재환 연구원은 "국내 주가가 10월 이후 크게 올랐는데 부동자금의 증시 유입은 기대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며 "아직도 투자자들은 주가가 상승 추세를 이어갈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유동성 장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위해선 증시가 보다 안정되고 경기여건도 더욱 호전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래에셋 이종우 실장은 "개인 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을 때 유동성 장세가 가능하다"며 "유동성 장세가 나타나기엔 증시 여건이 취약하고 경기상황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영익 실장은 "미국·이라크 전쟁 우려감이 해소되기 어렵고 미국·일본 경기도 좋지 않을 것으로 보여 내년 1분기까지 증시가 조정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재식 기자

angel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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