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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 당사자로서 한국이 과감히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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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북한이 1998년부터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추진하다가 2002년 10월 방북한 미국 대표단의 추궁을 시인함으로써 야기된 제2차 북한 핵위기는 이제 평화적으로 해결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민족적 재난을 일으키느냐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대북정책 수립에 관여해온 인사들이 국제원자력기구.한국.미국과 각기 체결, 합의한 내용을 위반한 북한보다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1월 20일 부시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북한도 1월 11~14일 방북한 미 하원의원 일행에게 6자회담 재개 용의를 표명한 만큼 북한 핵위기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우리 정부로서는 제4차 6자회담이 개최될 경우의 상황을 정확히 예견,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시 2기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변경할 것으로 전망되지 않으며,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도 새 정책 제시가 아닌 기존의 정책 집행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은 제4차 6자회담에서 새로운 제안을 하지 않고 지난해 6월 제3차 회담에서 제의한 동결과 폐기의 두 단계에 걸친 일곱 개의 대북 당근에 초점을 맞추어 협상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부인하면서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변경해야 핵 개발계획 포기가 가능하다는 일괄타결 방식과 동시행동 원칙을 고집하고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은 미.북 간의 의견 대립으로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것이다. 그 다음 예견되는 상황은 1993년 제1차 북한 핵위기에서 보았듯이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 경제제재를 포함한 안보리 결의안 채택 추진, 유엔 제재결의안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북측 입장 발표 순으로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재앙을 막기 위해 6자회담과 남북대화의 장에서 더 이상 회담 중재자니 촉진자니 하는 어정쩡한 자세를 버리고 안보문제, 특히 북한 핵위기의 직접 핵심당사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첫째,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한 북한과의 협상을 미국에 위임한 과거 정부의 정책을 버리고, 부시 대통령과 합의한 대로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우리 정부가 더욱 과감하고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 북측의 핵무기 개발 입장을 변호하는 인상을 주는 언급을 삼가고, 제3차 회담 개시에 앞서 '선(先) 핵 완전 폐기' 주장을 완화토록 미국을 설득한 것처럼 제4차 회담에서는 북한의 핵무기가 전략적으로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들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도록 북측을 설득해야 한다.

셋째, 우리 정부와의 군사.안보문제 논의를 기피하는 북측 태도는 민족 상생과 공영의 입장에서 있을 수 없음을 지적하고, 북한 핵위기가 계속되면 개성공단 건설, 철도.도로 연결, 금강산 관광과 같은 북한과의 교류.협력이나 지원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남북한이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하자는 '북한식 민족공조'와 궤를 달리하는 것이어서 북측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이렇게 해야 핵위기로 인한 전쟁으로부터 민족을 구할 수 있는데 어떻게 더 머뭇거릴 것인가?

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