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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침책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젊어서 시 나부랭이를 써봤자 소용없다. 사실은 좀더 기다려야 한다. 평생 동안, 가능하면 늙을 때까지 긴 평생 동안 의미와 꿀을 모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겨우 10행쯤 되는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시는 감정이 아니라 추억이니까.

『말테의 수기』(라이너 마리아 릴케)

외람된 일이나 여기서 나의 꿈을 밝히자면, 회갑에 맞춰 고향 바닷가에 작은 식당을 열고, 그 개업에 맞춰 시집을 펴내는 것입니다. 이런 꿈을 말하면 다들 피식 웃습니다. 반은 우습다고, 반은 부럽다고 합니다. 이따금 시흥의 한 자락을 붙들고 있을 때면 위의 글을 떠올려 마음을 가다듬곤 합니다. 시집을 내면, 살아오는 동안 연이 닿은 분들을 추억 속에서 되살려 한 권씩 부칠 생각입니다. 과연 몇 부나 찍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석희<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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