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새 문화공간으로 뜬다

드넓은 학교 운동장의 지하 공간이 주택가 주차난의 해결사로 등장했다. 또 주민들의 소중한 문화체육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택가 등을 부수고 주차·체육시설을 짓는 것은 보상비용이 만만찮은 데다 주민들의 반발도 겁나 섣불리 시도하기 힘들지만, 학교 운동장은 간단한 지하공간 공사만 거치면 원하는 용도대로 개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학교가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주민 편의시설이 입주하기에 안성맞춤인 셈이다.

◇주차장·수영장에 수방시설까지=노원구는 3일 "2004년까지 1백40억원을 들여 공릉1동 공릉초등학교 운동장 지하에 수영장·헬스장·집수정·주차장 등이 갖춰진 지하 3층, 연면적 3천여평 규모의 다목적 복합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릉초교 일대는 단독주택 밀집지로 공영주차장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던 지역이다. 학교 반경 3백m 이내 주차장 확보율이 78.5%로 서울시내 평균 86.8%보다 훨씬 낮다. 또 지하철 6, 7호선 태릉역이 위치해 유동인구가 많아 환승주차장의 설치도 시급한 형편이었다. 게다가 인근에 문화·체육시설이 전혀 없어 이 지역 주민들은 노원역이나 중계동까지 나가야 하는가 하면, 저지대 상습 침수지역으로 1998년 수해 때는 공릉초교 운동장도 어른 무릎높이까지 물이 차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노원구는 지난 10월 공릉초교 운동장 지하에 주차장(2백대)·헬스장(1백52평)·수영장(길이 25m×6레인)과 7천5백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수해방지용 집수정을 설치키로 하고 학교 측과 협의해 왔다.

공릉초교 운영위원회 위원장인 학부모 박봉숙(43)씨는 "처음에는 공사 기간에 소음 등으로 불편을 겪을 것이 우려됐지만, 일단 만들어 놓으면 아이들의 체육활동 등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많은 학부모가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 관계자는 "공사 기간에 학생들이 운동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빈 교실 5개를 터 체육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인근 주민에겐 '보배', 어린이 교통안전엔 '골치'=지난 5월 문을 연 성동구 금호동 '열린금호 교육문화관'은 금호초교 지하에 있다. 지은 지 37년 된 금호초교를 재건축하면서 학교부지 지하에 주차장과 문화·체육시설을 조성한 것이다.

지하 1∼3층 한쪽에 차량 1백63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을 만들고 나머지는 문화관으로 꾸몄다. 지하 1층은 체육관·다목적실·에어로빅실, 지하 2층은 문화강좌실·소강당·강의실, 지하 3층은 수영장 등이 들어섰다. 현재 2천5백여명의 주민이 회원으로 등록해 수영·에어로빅·헬스·택견·검도 등 스포츠 프로그램과 레고닥터·재즈댄스·퀼트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는 금호동 주민 김현자(53·주부)씨는 "사설기관보다 훨씬 좋은 시설을 갖춘 데다 월회비가 3만8천5백원으로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아 정말 좋다"며 "우리 동네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간을 내준 학교 입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학교 후문 쪽으로 통학하는 어린이들은 주차장 진출입로를 거쳐야 하는데 이곳에는 인도가 설치돼 있지 않아 위험하다는 것이다. 금호초교 오찬숙 교감은 "아침부터 헬스장에서 쾅쾅 대는 소리가 교실까지 들리는 등 교육적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학교 부근 교통량이 늘어나 어린이들의 등하교 안전지도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더 이상의 주차공간이 없는 주택가 밀집지역 주차난 해소를 위해 학교 주차장은 마지막 대안"이라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통학로와 차량 진출입로를 분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내년 말까지 중랑구 중곡초교(1백대), 영등포구 도림초교(1백38대), 강남구 포이초교(1백44대), 은평구 연광초교(1백50대), 은평구 서신초교(1백대) 등 5개 초등학교 지하에도 모두 6백32대 규모의 주차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