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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초심으로 돌아가시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한라산'의 시인 이산하(42)씨. 그가 최근 주목할 만한 두 편의 글을 들고 왔다. 하나는 혁명의 영원한 상징인 체 게바라 시집 『먼 저편』(문화산책 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계간 문예지 『문학인』 2002 겨울호에 발표했으며 곧 단행본으로 나올 선(禪)동화 '양철북'이다.

우선 『먼 저편』은 체 게바라 매니어를 자처하는 이씨가 3년 여의 노력 끝에 엮어 펴낸 시집이다. 체 게바라에 관한 각종 평전과 글모음집 등이 나와 있지만 시집은 이 책이 전 세계에서 최초다. 이 엮음 시집이 의미 있는 이유는 체 게바라가 일기나 서간문에 시임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산문에서도 시적인 성취를 이룬 대목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는 혁명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결코 그 목숨의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적들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적의 영혼에는 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내 손으로 꼭 체 게바라의 글들을 시집 형태로 한번 엮어보리라는 꿈이 비로소 이뤄졌다고 생각하니 내 창작 시집을 한 권 내는 것 이상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3년의 준비기간 동안 '체 게바라의 찢어진 군화를 꿰매고 구겨진 전투복을 다림질하는 마음'이었다는 그는 '한라산'으로 필화 사건을 겪고 11년 간 절필해야 했던 자신을 되돌아 보며 반성으로 충만해졌다고 한다(제주 4·3사건을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체제와 연관시켜 최초로 그려낸 장시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그는 1987년 구속되기에 이른다).

"지금까지/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중략)//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이 하나만은 약속해다오/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들처럼/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체 게바라, '먼 저편-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들에게'중)

그는 80년대의 운동과 문학 경험을 이력서 한 줄로 바꿔치기 하고 그것도 모자라 정치꾼이 다 된 당시의 '동지'들을 보면 "초심으로 돌아가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초심이 있었는가 의심이 들 정도"라고 한다. 한마디로 "물질로 보상을 받으려는 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를 보여준 게바라에 매료된 건 당연한 듯싶다.

나아가 그는 지난 봄 산사 기행문인 『적멸보궁을 찾아서』를 낸 데 이어 선동화 '양철북'까지 펴냈다. 고교생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재기 넘치는 동화는 문학소년 시절의 개인적 체험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 반드시 따라붙는 '한라산의 시인' 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렇더라도 혁명과 선이 그에게 동시에 출몰하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넓게 보아 시민적 자유와 선적인 진리의 결합이라는 이 시대의 화두와 크게 다르지는 않더라도.

"혁명이 결국 선으로 수렴할 수 밖에 없다면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체 게바라가 완전한 인간으로 구성된 이상사회를 꿈꿨다면 선승들의 목표는 화두를 깨치는 것이다. 결국 둘의 결합은 칼 마르크스식의 프락시스(실천)를 통할 수밖에 없다."

80년대에 '한라산'을 쓸 때 그는 시대에 대한 대답을 문학이 내놓을 수 있다는 젊은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불혹을 넘어선 그는 이제 오로지 질문을 던지는 문학만이 가능하리라고 한 발 물러섰다. 모두가 변해가면 안 변하고 있는 사람의 위치도 어쩔 수 없이 달라지게 된다. 우뚝 서려면 그래서 잊혀지는 길 밖에 없는 것인가.

문학평론가 하응백씨가 문인과의 대담 모음집 제목을 『친구야, 이제 다리를 건너거라』(2001)로 한 것은 이씨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도 다리를 건너지 못할 것 같다.

우상균 기자

hothe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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