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폭되는 국정원도청 의혹]'찔끔찔끔 폭로'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나라당이 '국정원 도청 자료'라며 폭로를 계속하고 있다. 내용이 충격적이어서 대선 와중에 도청 정국이 조성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의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필요한 때마다 입맛에 맞는 내용만 공개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도청을 주장한 지는 두달이 넘었다. 지난 9월 24일 정형근(鄭亨根)의원이 국회 정무위 국감 때 한화의 대생 인수 특혜 의혹을 제기한 것이 시작이다. 당시 鄭의원은 "도청자료"라고 말했다.

그 뒤 한나라당은 계속 추가 폭로를 해왔다. 최근엔 국회 의원회관, 한나라 당사와 민주당사 일대의 정치인과 취재기자들의 통화 내역이란 것을 뭉텅이로 내놓았고 1일엔 정부와 청와대·정치인·기자 등을 상대로 한 도청 문건을 제시했다. 앞으로 추가 폭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제보자와 구체적인 입수 경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한나라당이 제보자 보호를 명분으로 진상을 밝힐 증인을 감추는 것은 이처럼 국기를 흔드는 사안에서는 적당치 않은 태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제보자의 양심선언 형식으로 자세한 내용을 밝히고, 한나라당은 그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는 것이다. 제보자가 공개되면 문건의 작성 경위와 진위를 파악하기가 쉬워질 것이 분명하고, 이를 둘러싼 논란도 불식되며, 대책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간헐적 폭로와 내용 선별로 역정치공작 주장도 나온다. 특히 민주당과 청와대·국정원이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 홈페이지엔 '한나라당은 도청이란 증거를 명확히 밝혀달라'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국정원은 "정략적 의도 하에서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출처 불명의 괴문서를 조금씩 흘리면서 신변보호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제보자를 숨길 게 아니다"라며 "국정원 자료란 명확한 증거와 제보자를 조속히 밝히는 게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반발했다.

김정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