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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1>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26.신혼 단꿈도 잠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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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불국사 구품연지 발굴에 경주 안계리 신라 고분군 발굴에 이어 매달리다 보니 1970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듬해인 1971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여러 의미로 잊을 수 없는 한해다.

우선 문화재관리국의 임시직인 촉탁직 신분을 벗고 연구직 공무원인 학예사보(學藝士補)가 되어 문화재연구실의 정식 식구가 되었다. 4월에는 평생의 반려인 집사람과 결혼했다.

곧바로 소양강댐 수몰지구 발굴에 참가했고 이어 그 유명한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 발굴, 그리고 12월에는 전남 화순의 청동유물 일괄출토 유적 수습과 발굴 조사까지 '사건'들의 연속인 해였다.

나의 오늘이 있기까지 외길 인생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아내의 내조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내와는 그 흔하다는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 결혼은 마치 '긴급 구제발굴'처럼 전격적이었다.

아내의 오빠인 처남은 고등학교 한해 선배로 마침 서울에서 같은 하숙방을 쓰는 사이였다. 당시 나의 부모님은 집안의 장남이 나이 서른을 넘겨도 결혼할 의사가 없다며 걱정이 대단하셨다. 하루는 반 농담으로 선배에게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말을 건넸다. 돌아온 선배의 대답은 '가까이서 찾으면 될 것을 뭐 그리 어렵게 생각하느냐'라는 알쏭달쏭한 것이었다.

선배가 말한 '가까운 데 있는 인물'은 여동생이었다. 농담이 씨가 되어 그 선배가 처남이 된 것이다. 마산 같은 고향에서 자랐지만 아내와는 마주친 적이 없었다. 우리는 3·1절을 이용해 맞선을 보게 됐다. 아내의 공식적인 서울 나들이 목적은 언니 댁을 다녀온다는 것이었다.

선을 본 지 불과 몇 시간 후 아내와 나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밤 열차를 타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의 승낙을 받기 위해서였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만난 지 2개월도 안돼 결혼에 성공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고 홀딱 빠졌다.

4월 21일 일가 친척, 선후배 동료들의 축복 속에 서울 창덕궁 앞 신혼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경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어차피 마산 부모님들께 인사 드리러 가야 했기 때문에 여행지로 경주가 적당했다. 지금은 없어진 불국사 관광호텔에 여장을 풀었고 복원 공사로 어수선한 불국사 경내를 둘러봤다. 경주는 그후 수없이 찾았지만 아내와 함께 간 적은 없다.

신혼살림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한옥집의 문간방에 차렸다. 각오했던 일이지만 신혼의 달콤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소양강댐 수몰지구 발굴조사 현장으로 가게 된 것이다.

소양강댐 건설은 강원도 춘천시 동면 월곡리와 신북면 천전리 사이에 높이 1백23m, 길이 5백30m의 초대형 댐을 쌓는 대역사였다. 진흙과 돌로 만든 사력(砂礫)댐인 소양강댐은 당시로는 동양 최대의 기념비적인 규모였다. 댐 공사로 3개 시·군, 6개 면, 38개 리가 물에 잠겨 4천6백여 세대가 이주해야 했고 논밭도 2천7백㏊가 수몰됐다. 수몰 지역 내 고인돌(支石墓)유적과 선사시대 집자리(住居址)가 발굴조사 대상이었다.

발굴조사는 성격상 긴급 구제발굴이었다. 건설부(현 건설교통부)의 요청으로 문화재연구실 주관하에 국립박물관 고고과와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가 합동으로 발굴에 참가했고 5월 8일 시작, 6월 2일에 끝마쳤다. 발굴에 필요한 모든 경비는 수몰지역 보상금으로 책정해 놓은 예산에서 집행됐다.

당초 조사 대상은 고인돌 9기에 절터(寺址) 한 곳이었으나 절터는 최근의 것으로 판명돼 조사에서 제외했고 고인돌 중에서도 3기는 원위치를 벗어난 사실을 알게 돼 역시 제외했다.

수몰지역은 주민 대부분이 이주해 황량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발굴대원들의 숙소가 마땅치 않아 춘천시에서 차량으로 현장까지 출근해야 했다. 출퇴근 차량은 '스리쿼터'라고 부르는 군용 4분의 3t 트럭이었다. 초여름 무더위 속에 춘천 시내에서 발굴현장까지 비포장도로를 1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발굴을 시작하기도 전에 몸이 지치는 열악한 조건이었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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