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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세계담장’을 넘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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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2007년 프로야구 롯데의 김무관 타격코치는 “사직구장 펜스를 낮출 수 없나. 펜스 상단에 맞히는 이대호의 타구가 1년에 20개 가까이 되는 것 같네”라고 푸념했다. 롯데 홈인 사직구장 펜스 높이는 4.85m다. 다른 구장보다 2m쯤 높다. 이대호(28·사진)의 타구는 툭하면 펜스에 맞고 나왔다.

이대호는 14일 광주 KIA전에서 9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낸 뒤 “지난해까지 펜스를 맞는 타구가 많았는데 올해는 타구의 평균 비거리가 몇m 는 것 같다. 그게 달라진 점”이라고 홈런 비결을 설명했다.

이대호는 12일 삼성전에서 이승엽 등 3명이 갖고 있던 6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깨뜨렸다. 이어 13일 광주 KIA전에서는 일본 오 사다하루의 기록(7경기 연속)도 넘어섰다. 14일 대포는 켄 그리피 주니어 등이 갖고 있는 메이저리그 기록(8경기)을 무너뜨린 것이다. 일본과 미국 언론도 이대호의 9경기 연속 홈런을 ‘세계기록’이라고 표현했다.

이대호는 15일 10경기 연속 홈런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15일까지 106경기에서 38홈런을 쏘아올렸다. 2006년 타격 3관왕(타율 0.336, 홈런 26개, 타점 88개)을 차지할 때부터 그는 최고타자였다. 이후 4년간 비슷한 기록을 내다가 올해 홈런이 급증했고, 타점(111개·2위)도 함께 증가했다.

작은 차이가 거인을 만들었다. 지난 겨울 신혜정(27)씨와 화촉을 밝힌 이대호는 “결혼 후 심리적 안정과 함께 체력관리가 잘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930~950g짜리 무거운 배트를 쓴다. 그래서 타구에 힘이 실린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8월에는 힘이 떨어져 890~900g 배트를 사용했다.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그는 “2006년엔 팬과 언론의 관심에 들뜬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경험을 쌓으면서 마음을 다잡는 법을 깨닫고 있다. 야구만 잘하면 좋은 기사가 나오는 걸 알게 됐다”며 웃었다.

이대호를 상대로 투수들은 정면승부를 피하고 있다. 도망가는 공을 따라가다 보면 스윙이 흐트러지게 마련이지만 이대호는 그마저도 뛰어넘었다. 이대호는 “투수의 견제도 내가 이겨내야 할 몫이다. 어차피 실투 한두 개는 나온다. 그거 하나만 노려 치면 된다”면서 “예전에는 욕심만 앞섰는데 지금은 욕심과 자신감 사이에서 투수를 상대하고 있다”며 어른스럽게 말했다. 이대호는 덩치에 맞지 않게 부드럽고 빠른 스윙을 타고났다. 남들이 “타율보다 홈런에 집중해야 한다” “체중을 빼야 한다”고 잔소리했지만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그리고 경이적인 홈런 행진을 이어가며 이승엽 이후 최고의 홈런타자로 거듭났다.

광주=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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