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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이 노숙자 숙소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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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노숙자들이 유람선에서 잠을 잔다? 엉뚱한 소리처럼 들리긴 하지만 노숙자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뉴욕시가 짜낸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다. 노후 유람선을 개조해 노숙자들에게 겨울철 숙소로 제공하는 방안을 조심스레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담당 공무원들이 며칠 전 카리브해의 바하마로 날아갔다. 낡은 유람선을 직접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유람선을 노숙자들의 거처로 고쳐 쓰는 데 별 문제는 없는지, 그리고 배를 사고 이걸 적당한 용도로 개조하는 데 돈은 얼마나 드는지도 파악할 예정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대도시들이 그렇듯 뉴욕시도 '홈리스(노숙자)' 문제로 쩔쩔매고 있다. 현재 뉴욕시의 노숙자는 3만7천명선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4년 전의 2만1천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최근 3년간 이어지고 있는 경기침체가 이런 추세에 당연히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검사 출신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시장의 밀어붙이기 정책으로 외견상 줄어들던 노숙자 숫자가 다시 표면화한 측면도 있다.

홈리스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외치는 시민단체들은 유람선 숙소 같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노숙자들에게 영구임대 주택을 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걸 몰라서 못하는 공무원들이 있을까. 문제는 돈. 지난해 9·11 테러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 탓에 코가 석자나 빠진 뉴욕시로선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뉴욕시는 법에 따라 집 없는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줄 의무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시가 운영하고 있는 노숙자 숙소는 1백25개소. 올 들어 18곳에 새 숙소를 더 짓기로 하고 현재 공사를 진행 중이다.

시는 돈을 적게 들이면서 수용인원을 늘리기 위해 갖가지 묘수를 짜내고 있다. 지난 여름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브롱스에 있는 과거 교도소 건물을 노숙자 거처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아무리 집 없는 사람들이라도 감옥에 갇히는 느낌을 줘서는 곤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뉴욕시는 빈 수도원이나 마을회관을 이런 용도로 고쳐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옛말이 21세기에도 유효한 것일까.

sims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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