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7>제104화두더지인생...발굴40년:22.경주안계리 고분발굴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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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천년수를 서로 먼저 마시겠다며 야단들인 인부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가 먼저 마셔 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막상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물에 어떤 성분이 포함돼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항아리는 출토유물이기 때문에 기록과 촬영이 끝나기 전에는 반드시 출토상태로 현장 보존해야 했다.

때문에 물담긴 토기 항아리를 옮길 수도 없었다. 벌판에서 수십, 수백의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꼼짝없이 천년수를 마셔야 할 형편이었다. 트릭은 불가능했다. 따가운 인부들의 시선을 느끼며 항아리 앞에 앉았다. 물은 맑았다. 그래서 바닥에 부드러운 진흙이 여러겹 침전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차례 침전이 반복됐다는 증거다.

바가지로 퍼마셔야 할지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불현듯 생각난 것이 빨대였다. 그러나 갑자기 빨대를 구할 수 없어 주변 보리밭에서 보릿대를 꺾어오게 했다. 보릿대를 빨대 삼아 물 속에 넣고는 물 한 모금을 빨아올려 목구멍으로 넘기지는 않고 잠시 입안에 머금었다. 인부들은 숨을 죽이고 이 희한한 시음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은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꿀꺽 삼켰다. 그리고 눈을 감고는 한동안 그 상태로 앉아 있었다. 한시간이 지났지만 속이 쓰리거나 하지 않았고 어떤 신체상의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약속한 대로 인부들에게 마시도록 했는데 말썽을 막기 위해 질서가 필요했다.

마시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각자 보릿대 빨대를 준비해 한사람씩 차례로 빨아 마시게 했다. 보릿대 빨대는 혹 있었을지 모를 말썽을 막은 절묘한 아이디어였다. 빨대로 빨아먹다보니 한 사람 당 기껏해야 몇모금 마시는 정도였기 때문에 마지막 사람까지 공평하게 천년수를 마시고도 일부가 남았다.

남은 천년수는 2홉들이 빈 소주병에 담아 서울 실험실로 가져가 성분을 분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부 중 한사람의 간청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그 인부는 팔순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해소병에 걸려 지독한 기침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인부는 '우리 어머니 살려주는 셈치고 남은 천년수를 달라'며 애원했다.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병째로 주고 말았다.

천년수를 마신 인부의 어머니가 과연 해소병을 고쳤는지 뒷얘기는 듣지 못했다. 아들의 정성을 봐서라도 심리적인 효과는 봤을 듯 싶다. 천년수 발견은 안계리가 처음이 아니었을텐데 이전에는 어떤 소동을 거쳐 몇사람이나 마셨을까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고민해도 풀 수 없었던 의문은 1천년 이상 나이를 먹은 오랜 무덤에 함께 묻혀 있는 토기 항아리에 어떻게 해서 맑은 물이 가득 담길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소나기라도 내려 항아리에 빗물이 고이는 상황이었다 해도 항아리 안에 4ℓ 가까운 양의 물이 모이려면 장마철이라도 만나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여야 가능할 일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항아리 바닥에는 진흙 성분의 고운 흙이 켜를 이루며 쌓여있어 진흙과 물로 이뤄진 항아리 안의 상태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고 오랜 기간 여러차례 물이 담겼다가 증발됐다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형성된 것이 분명했다.

추억으로만 간직해 오던 의문은 훨씬 뒤에야 그럴 듯한 추론을 통해 해소하게 됐다. 무덤을 쓸 때 지하수가 흐르는 위치나 소위 물골에 쓰게 되면 장마라도 들어 많은 양의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었을 때 무덤 내부 공간에 일시적으로 물이 고였다가 빠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때 항아리에 담겼던 물은 미처 증발하지 못하고 남게 될 것이다. 그런 항아리를 발굴조사에서 발견한 것이다.

인부의 간청 때문에 희귀한 천년수의 성분을 분석해보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쉽다. 어쨌든 천년수를 마신 나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아무런 신체 이상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천년수에 감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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